30g이 거포와 ‘똑딱이 타자’ 가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9일 03시 00분


■ 길이-무게 미세한 차이가 빚는 ‘배트의 마법’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야구 타자는 배트를 가린다. 그것도 길이 1cm, 무게 10g 차이에 민감할 정도로 심하게 가린다. 야구 배트는 언뜻 보면 모두 비슷해 보인다. 일반인이 구입할 때는 자신의 키에 맞는지 정도만 체크하는 정도다. 그러나 프로 선수의 방망이는 크기와 무게가 각양각색이다.》
전설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
1134g-92cm 배트 휘둘러

1960년대이후 스피드 중시
더 가볍고 짧은 제품 인기

이승엽 배트 915~925g
이치로는 880~900g 사용

야구규칙 1조 10항은 ‘방망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배트는 가장 굵은 부분의 지름이 2.75인치(약 7cm) 이하, 길이 42인치(약 106.7cm) 이하의 단일 목재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무게는 물론이고 그립 부분의 굵기 등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초창기 타자들은 크고 무거운 배트를 선호했다. 공만 제대로 맞힌다면 배트가 클수록 타구가 멀리 날아간다는 게 당시 통념이었다.

1920, 30년대 전설의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는 무게 40온스(약 1134g) 이상에 길이 92cm가 넘는 배트를 휘둘렀다. 반면 일본을 대표하는 홈런 타자 마쓰이 히데키(LA 에인절스)는 무게 900g 안팎에 길이 87cm의 배트를 사용한다. 체격은 마쓰이(189cm, 99kg)가 루스보다 크지만 사용하는 배트 무게는 230g 이상 가볍다. 최근 넥센 강정호가 거포 변신을 선언하며 늘린 배트 무게가 10g(860g→870g)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식당에서 먹는 고기 1인분 무게 200g은 타자들에게는 천근만근인 셈이다.

메이저리그를 점령했던 무겁고 큰 배트는 1960년대 이후 가볍고 짧은 배트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는 타구에 실리는 힘이 배트의 부피가 아니라 배트 스피드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에 따른 것이다. 강속구 투수가 늘어나고 피칭 기술이 발전한 것과도 맞물려 있다. 같은 배트 스피드를 내기 위해 무거운 배트를 짧게 잡기보다 가벼운 배트를 최대한 길게 잡는 타자들이 늘어났다.

배트가 예전에 비해 가벼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홈런 타자들은 교타자에 비해 무겁고 긴 배트를 사용한다. 2008년 타격왕에 올랐지만 홈런이 9개에 그쳤던 김현수(두산)는 880g이던 배트 무게를 30g, 길이를 0.5인치 늘린 뒤 23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타율(0.357)은 변동이 없었지만 무거운 배트를 사용하면서 타구의 비거리가 늘어난 것이다. 무거운 배트를 마음먹은 대로 휘두르기 위해 김현수는 혹독한 훈련을 감수했다.

‘홈런 타자=무거운 배트’ 공식은 일본이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에게도 통용된다. 이승엽(요미우리)이 사용하는 배트의 무게는 915∼925g으로 메이저리그 10년 연속 200안타를 노리는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의 배트(880∼900g)보다 무겁다. 길이도 1.35cm 길다. 마쓰이는 이승엽보다 약간 가볍지만 조금 긴 배트를 쓴다. 배트 지름에 따라서도 무게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길다고 무거운 것은 아니다. 톱스타들은 배트의 제원에 대해 0.1mm 단위까지 주문한다.

이승엽, 이치로, 마쓰이의 야구 용품을 제공하는 일본 미즈노는 “이승엽의 배트는 손잡이(그립) 부분이 가늘어 배트 헤드 무게를 살린 스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손잡이가 가늘고 헤드가 두꺼우면 원심력이 커진다. 헤드의 최대 지름은 7cm까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타자는 6.2∼6.5cm에 맞춰 무게를 가볍게 한다. 배트 스피드가 빠른 추신수(클리블랜드)는 헤드 지름이 6.2cm인 배트를 애용한다.

한 선수가 여러 가지 배트를 사용하기도 한다. 나이, 체력과 관계가 있다. 이승엽은 2003년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56개)을 세울 때 무게 950g이 넘는 배트를 썼지만 최근 무게를 줄였다.

배트의 크기와 무게도 중요하지만 일반인은 잘 구별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소재다. 미즈노는 북미산 단풍나무, 북미산 물푸레나무, 훗카이도산 물푸레나무(아오다모)를 사용한다. 단풍나무는 강도와 내구성이 높지만 유연성이 떨어진다. 물푸레나무는 강도와 유연성이 높지만 내구성이 떨어져 부러지기 쉽다. 절충형인 아오다모는 타격감이 좋은 편이다.

하시마=이승건 기자 why@donga.com


▲ 동영상 = 이치로 배트 제작 과정1

▲ 동영상 = 이치로 배트 제작 과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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