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웨스트햄의 경기가 열린 7일 영국 런던의 업턴파크.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도 충성도가 높기로 소문난 웨스트햄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경기 시작 10분 만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3만3000여 홈 팬의 환호를 탄식으로 만든 주인공은 한국에서 온 ‘블루 드래건’ 이청용(22)이었다. 이날 이청용은 한 박자 빠른 면도날 크로스로 케빈 데이비스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2연승을 이끌었다.
○ 이청용 최고 경쟁력은 명품 크로스 시즌 도움 7개(5골)를 기록 중인 이청용의 크로스는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도 정상급이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개인기, 돌파력 등도 좋지만 이청용의 강력한 경쟁력은 바로 크로스”라며 “넓은 시야와 타이밍, 정교함의 3박자가 어우러져 나온 명품 크로스”라고 평가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도 “청용이는 아무리 수비가 강하게 저지해도 침착하게 크로스를 올린다. 다른 선수들도 이런 크로스를 보고 느끼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청용이 데뷔 시즌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게 만들어준 크로스는 일반적으로는 경기장을 가로질러 자기편에게 볼을 보내는 중장거리 패스로 측면과 2선에서 슈팅을 전제로 찔러주는 패스를 의미한다.
크로스의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하나의 흐름처럼 된 포백 지역 방어(수비에 4명을 두는 형태)는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거의 내주지 않는다. 선수들의 체력과 스피드도 과거에 비해 훨씬 향상됐다. 잉글랜드축구협회 리처드 바트 강사의 ‘유로 2008 분석’에 따르면 선수들이 경기당 움직인 거리는 1965년과 비교해 평균 50% 가까이 늘어났다. 중원 압박이 심해지다 보니 개인기를 앞세운 공격이나 중앙에서 짧은 패스를 이용한 공격의 효율성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대신 측면에서 빠른 크로스를 이용한 공격이 더욱 힘을 얻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이젠 스트라이커들도 크로스 능력을 갖춘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포백수비-중원압박 강화로 중앙 짧은 패스공격 힘들어 빠른 측면 크로스공격 필요
“원정 첫 16강 달성하려면 크로스 정확성 더 높여야”
○ 베컴과 긱스의 명품 크로스 배워야 한국 축구가 과거 월드컵에서 고전할 때마다 나온 지적이 있다. 바로 부정확한 크로스. 일단 올려놓고 본다는 의미에서 ‘로또 크로스’로 불린 이 크로스 때문에 좋은 경기를 하고도 눈물을 흘린 적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크로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형욱 MBC 해설위원은 “중앙 수비 라인의 조직력, 스트라이커의 골 결정력 등도 중요하지만 일단 크로스를 가다듬어 공격 성공률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선수들이 본받아야 할 크로스의 대가로는 누가 있을까. 데이비드 베컴(AC밀란)과 라이언 긱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첫손에 꼽혔다. 베컴의 오른발에서 뿜어 나오는 ‘미사일 크로스’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경기당 0.57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개수에선 152개로 프리미어리그 통산 2위. 베컴은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강력한 발목 힘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궤적의 크로스를 올려 상대 팀에 비수를 꽂는다. 왼발 크로스의 달인은 긱스다. 프리미어리그 통산 도움 개수 1위인 긱스 크로스의 강점은 타이밍이다. 변칙적인 드리블로 상대 진영을 뚫은 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정교하게 날아가는 그의 크로스는 알고도 못 막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한국축구 크로스 대가들이 말하는 명품비결 ▼
최순호(48·강원 감독)=아무리 기술이 좋고 좋은 눈이 있어도 발목 힘이 부족하면 정교한 크로스를 올릴 수 없다. 수비나 미드필드 진영에서 한 번에 연결하는 롱 크로스를 올리려면 강한 발목 힘이 필수다. 나는 평소 발목에 튜브를 끼고 다녔다.
고정운(44·풍생고 감독)=선수의 스피드가 생명이다. 스피드가 없을 경우 좋은 위치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크로스를 올리는 상황조차 만들기 쉽지 않다. 달리는 속도에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크로스를 올리려면 탄탄한 허벅지와 유연한 발목이 필수다.
하석주(42·전남 코치)=강약 조절이 핵심이다. 아무리 정확한 타이밍에 좋은 각도에서 크로스를 올린다 해도 강약 조절에 실패하면 수비수들에게 읽혀 무용지물이 된다 .
서정원(40·올림픽대표팀 코치)=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공격수들이 문전으로 쇄도하는 속도, 골키퍼의 위치, 수비수들의 간격을 보고 적절한 시점에 크로스를 올려야 한다. 시간 날 때마다 측면에서 공격수의 특정 신체 부위를 목표로 크로스 훈련을 자주 했다.
염기훈(27·수원)=균형감이 가장 중요하다. 크로스의 경우 의도했던 발의 부위와 조금만 다른 곳에 닿아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언제든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끔 무게중심 잡는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김형범(26·전북)=시야가 넓어야 한다. 프로 선수라면 기본적으로 크로스 기술과 힘은 갖추고 있다. 일단 올리고 보는 뻥 크로스와 동료에게 정확히 꽂아주는 명품 크로스의 차이는 공간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시야에서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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