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기자의 킥오프]골키퍼 홀대하는 한국축구의 ‘슬픈 자화상’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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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수문장 이운재(수원)가 흔들리고 있다. 4일 서울과 K리그 경기에서 어이없는 실책으로 골을 내주는 등 3골을 헌납해 1-3 패배의 화살을 한 몸에 받았다. 최근 5경기에서 12실점.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남아공 월드컵 출전도 불투명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주전자리를 지켜온 그가 흔들리자 코칭스태프도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운재를 대신할 마땅한 대안도 없다.

한 아마추어 골키퍼 지도자는 “골키퍼를 무시해서 나온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축구협회 경기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프로를 제외하면 골키퍼 코치가 없는 곳이 태반이다. 대학은 약 50%, 중고교는 30% 정도만 골키퍼 코치를 고용하고 있다. 서너 개 학교가 1명의 골키퍼 코치를 공동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중고교의 경우 감독 밑에 코치를 둘 경우 골키퍼 코치만 두기도 하는데 ‘1종 대형면허 소유자’란 특별조건이 붙는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골키퍼 코치가 버스운전사 역할까지 1인 2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현실은 더 열악하다. 골키퍼의 자질을 발견하고 일찌감치 키워야 하지만 극소수 학교를 제외하고는 골키퍼 코치가 전무한 상태다.

골키퍼 코치가 있는 경우에도 제대로 된 지도자 과정을 거치지 못해 엉뚱한 훈련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 한 골키퍼 코치는 “현장에서는 공을 막는 법만 가르친다. 하지만 그런 기술에 더해 수비와 호흡하며 움직이는 법 등 다양한 전술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국제용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국축구 전반에 골키퍼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보니 선수들도 골키퍼를 기피한다. 이운재를 넘어서는 수문장이 나타나지 않는 배경이다.

유럽에서는 골키퍼가 인기 포지션이다. 은퇴한 독일의 올리버 칸,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부폰(유벤투스), 네덜란드의 에드빈 판데르사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체코의 페트르 체흐(첼시) 등 슈퍼스타가 즐비하다. 수비와 공격까지 지시하다 보니 머리 좋은 선수가 골키퍼를 하는 게 전통이다.

골키퍼가 흔들리면 팀 전체가 흔들린다. 한국축구가 장기적으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골키퍼를 홀대하는 풍조부터 바꿔야 한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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