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네팔 포카라에서는 국내외 산악인들끼리 토론이 벌어졌다. 한국의 오은선(44·블랙야크)과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7)이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 화두였다. “산에 오르는 것은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열을 내는 한 산악인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당신은 예지 쿠크츠카란 이름을 들어봤습니까? 당신이 쿠크츠카의 이름을 한 번 듣는 동안 라인홀트 메스너란 이름은 열 번쯤 들었을 겁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폴란드의 쿠크츠카는 1987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히말라야 14봉우리를 모두 오른 산악인이다. 이탈리아의 메스너는 쿠크츠카보다 1년 앞선 1986년 14좌 완등을 이뤘다.
○ 내일 해발 7200m 캠프4로 이동
1986년 이후 24년이 흐른 2010년 히말라야는 여성 최초 14좌 완등의 주인공을 가리는 경쟁으로 다시 한 번 뜨겁다. 중심에는 오은선과 파사반이 있다. 오은선은 22일 오전 7시(현지 시간) 14좌 완등의 마지막 봉우리인 안나푸르나(8091m) 정상을 향해 베이스캠프(4200m)를 떠났다. 오전 10시 캠프1(5100m)을 거쳐 오후 2시 캠프2(5600m)에 도착한 오은선은 23일 캠프3(6400m), 24일 캠프4(7200m)에 오른 뒤 25일 오전 정상에 서겠다는 각오다.
이번 1차 도전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경쟁자인 파사반이 17일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으며 13좌를 올랐기 때문이다. 21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떠난 파사반은 역전을 노리고 있다. 그는 다음 주 초 마지막 하나 남은 시샤팡마(8027m) 베이스캠프로 들어갈 예정이다. 파사반은 4월 초 대원 일부를 시샤팡마로 보내 정상까지 루트 작업을 이미 마쳤다.
오은선은 25일 정상 등정에 성공할 경우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영광을 무난하게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이미 고소 적응을 마친 파사반은 5월 초에 시샤팡마 정상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오은선으로서는 등정이 미뤄질 경우 심리적으로 쫓길 수밖에 없다. ○ 25일 정상부근 초속16m 바람
오은선은 베이스캠프를 떠나며 말을 아꼈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3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머릿속에는 안나푸르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머릿속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현재 그의 컨디션은 좋다. 히말라야 4개 봉을 연속으로 오른 후 안나푸르나를 찾았던 지난해 가을에 비한다면 날아갈 듯하다.
○ 오은선, 막판 컨디션 조절
문제는 역시 날씨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25일 정상 부근의 바람은 초속 16m로 등반이 불가능하다는 초속 20m보다는 약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2등보다 열 배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까. 쿠크츠카가 14좌 완등을 위해 마지막으로 오른 산은 공교롭게도 시샤팡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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