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이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의 종착지로 택한 산은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을 가진 안나푸르나(8091m)였다. 오은선이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으며 역사의 주인공이 되자 국내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안나푸르나와 한국인의 악연이 새삼 화제가 됐다. 안나푸르나는 등반 루트가 험하고 기후 변화가 심해 등정이 힘든 것으로 유명하다.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 등정자가 4500여 명에 이르는 데 비해 안나푸르나는 오은선과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 등 올봄 등정자를 합쳐도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반면 사망자는 60명인데 이 중 한국원정대가 무려 14명(한국 산악인 5명, 셰르파 9명)이다.
한국 여성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자였던 지현옥은 1999년 안나푸르나 등정 후 하산하다 실종됐다. 당시 원정대를 이끈 엄홍길은 5번째 도전 만에 정상을 밟았을 정도로 안나푸르나는 한국 산악인들에게 매정했다.
지난해 가을에도 오은선을 비롯해 한국 원정대 4팀이 안나푸르나를 찾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따라서 이번 오은선의 등정 성공으로 안나푸르나가 이후에는 한국 산악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줄지 관심이 쏠린다.
때마침 안나푸르나 여신의 허락을 구하는 한국 원정대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한 박영석 원정대는 안나푸르나 남벽(오은선이 오른 건 북벽)에서 두 번째 코리아 루트를 뚫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박영석은 히말라야 14좌에 모두 새 길을 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 낭가파르바트(8126m) 등정 후 사망한 고미영 씨의 등반 파트너였던 김재수도 초오유(8201m) 등정을 마치고 안나푸르나로 향할 예정이다. 지난해 가을 안나푸르나를 찾았지만 눈사태로 발길을 돌린 그는 이번엔 기필코 정상에 서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부산 다이나믹 원정대도 5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입성한다.
현재는 칸첸중가(8586m) 등반 중이다. 안타까운 것은 5월 안나푸르나로 올 예정이던 김홍빈과 한국도로공사 합동 원정대가 마나슬루(8163m)에서 2명 실종, 4명 부상이라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외국 산악인 1명도 27일 안나푸르나 정상 등정 후 조난당했다. ‘풍요의 여신’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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