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오피스텔. 언뜻 보면 평범한 주거 공간 같은 이곳에 국내 정상의 남녀 프로골퍼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스포츠심리 전문가인 조수경 박사(41)의 연구소인 이곳에서 상담을 받기 위해서다. 올 시즌 일본여자프로골프투어 5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 1회, 준우승 4회를 기록하면서 상금 선두에 나선 박인비(SK텔레콤)는 “조 박사의 도움이 컸다”며 고마워했다.
지난달 27일 연구소에서 만난 조 박사는 해외 출장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수영스타 박태환이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호주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프로 골퍼의 심리 해결사로 명성을 쌓다 보니 박태환도 담당하게 됐다.
박인비를 비롯해 배상문(키움증권) 홍순상(SK텔레콤) 유소연(하이마트) 등은 조 박사와의 인연을 통해 상승세를 탔다. “워낙 훌륭한 선수들을 만난 덕분이에요. 돌파구를 찾고자 서로 믿으며 의기투합한 결과죠.”
학창 시절 운동선수를 꿈꾸던 조 박사는 집안의 반대에 부닥쳤다. 그래서 운동선수를 길러내는 지도자로 선회했다. 이화여대 체육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미국 보스턴대에서 스포츠심리학 석사과정을 밟을 때 다양한 현장 경험을 했다. 보스턴 연고의 미국프로농구 셀틱스와 메이저리그 레드삭스 선수들의 상담 자문에 나섰고 주니어 선수들의 인성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화여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스포츠심리 연구소를 개설한 그는 지인의 소개로 주니어 골퍼들의 심리를 상담한 것을 계기로 멘털 스포츠의 대명사라는 골프 분야에 집중하게 됐다. 보통 1주일에 한 번 두세 시간씩 대면 상담을 하거나 전화 또는 e메일로 대화를 나눈다. 심층적인 심리 테스트로 해당 선수의 인지, 정서, 감정 등을 진단한 뒤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고의 수행 능력과 자신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조 박사는 박인비에 대해 “2008년 US오픈 우승 때까지 줄곧 엘리트 코스만 밟다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부진에 빠졌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장점을 키워주는 데 집중했더니 효과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슬럼프와 실패의 주된 원인으로 정확한 자기 인식과 합리적인 사고가 부족해 남의 탓으로 회피하려는 경향을 꼽았다.
조 박사는 “실수를 빨리 잊으라고 하지만 쉬운 건 아니다. 1m 파 퍼트를 놓쳐 보기를 하고 나면 다음 홀에서도 머리에 남는다. 안 좋은 걸 떨쳐버리려고 애쓰기보다는 그 자리를 다른 목표로 채우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달라진 눈빛으로 선수들의 변화를 읽는다는 조 박사는 상담 시간을 빼면 철저하게 선수들과의 사적인 만남을 피한다. 사사로운 감정이 섞이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어서다. 조 박사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흔히 우승을 떠올리겠지만 선수가 자기 종목에 대한 자부심으로 즐겁게 일상을 보내고 기대감 속에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요. 결과는 그 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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