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프로배구 GS칼텍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숙소로 쓰고 있는 이곳을 찾았을 때 어머니 같은 인상의 한 여성이 기자를 맞았다. 그는 바로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첫 여성 감독인 조혜정 감독(57)이다.
“자신감”
타성에 젖지 않고
전혀 새롭게 팀 운영
조 감독은 자신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선수들과 27일 첫 대면식을 가졌다. 이날 조 감독은 A4용지 5장짜리 취임문을 직접 작성해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만큼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많았고 자신감도 있었다. 조 감독은 “국내 여자 배구는 30년 전과 비교할 때 전술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내가 감독 경험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성에 젖지 않고 새롭게 팀을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컸다. 조 감독은 “내가 잘하지 못하면 앞으로 지도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남성들이 득세한 지도자 세계의 편견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였다. 조 감독은 “같은 실수를 해도 주위에서 남자 감독들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 감독은 실수를 하면 실패로 몰아가는 면이 있다. 외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선수에게만 몰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같은 여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 감독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다. 조 감독은 “남자들은 앞에서는 험한 말을 해도 술 한잔 마시면서 잊어버린다. 하지만 여자는 앞에서 웃어도 뒤에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두려운 문제다.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어머니’처럼 선수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저 편안한 ‘어머니’로 선수들에게 다가간다면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같은 여자이니 이해하겠지’하는 기대다. 조 감독은 “여자 감독으로서의 이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선수들도 처음으로 맞는 여자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있을 것이다. 또 같은 여자로서 너무 많이 알다 보니 선수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친근하고 부드럽게 다가가되 서로의 약속에 대해서는 엄하게 할 계획이다. 혼자 결정을 내리기보다 신만근 장윤희 코치와 함께 상의하면서 팀을 운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담감” 지도자 준비 후배에 누 끼치게될까 걱정도
첫 여성 감독인 만큼 선례가 없다는 점도 조 감독에게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보통 남자 감독들은 코트에서 양복을 입고 팀을 지휘한다. 조 감독은 “어디서 참고할 곳이 없다 보니 고심이 크다. 정장을 입을 계획이지만 매번 바꿔 입을 수도, 같은 옷을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며 웃었다. 다음 시즌 목표에 대해 묻자 조 감독은 “구단이 성적보다는 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배구를 원한다”고 말했다. 질문을 바꾸어 첫 여성 감독으로서의 목표에 대해 묻자 대답은 달랐다. 조 감독은 “‘그럼 그렇지. 여자 감독이 별 수 있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지난 시즌보다 더 나은 성적은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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