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 고만고만한 투수가 이 말을 했다면 딴생각을 할 여유가 없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던지기만 하면 이기는 투수의 말이다. 시즌 초 등판 불패 행진 중인 SK 일본인 투수 카도쿠라 켄(37). 그는 요즘 오로지 야구 생각과 이겨야겠다는 마음뿐이다.
한국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은 카도쿠라는 30일 현재 6경기에 나가 6승을 거뒀다. 다승 선두이자 승률(100%) 탈삼진(39개) 1위에 평균자책 3위(1.98)로 30대 후반의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에서 2004∼2007시즌을 함께 뛴 LG 마무리 투수 오카모토 신야(36)는 “전성기와 비교해 구종이나 구위가 달라진 게 없다. 구속도 완전히 회복했다”며 입에 침이 마르지 않았다.
그러나 카도쿠라는 고개를 젓는다. “지금이 더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전성기가 구위는 훨씬 좋았다”는 것. 전성기 자신의 모습을 한국 팬들은 잘 모른다는 듯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진짜 강했다”며 웃었다. 카도쿠라의 전성기는 요코하마에서 뛰던 2005, 2006년으로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올렸고 2005년에는 리그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강해진 건 틀림없다”고 한다.
SK 김성근 감독이 이런 카도쿠라를 안타깝게 바라본 때가 있다. 김 감독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내가 오라고 할 때 왔으면 15승은 충분히 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정규 시즌에서 8승 4패 평균자책 5.00으로 기대에 다소 못 미쳤던 카도쿠라가 포스트시즌 들어 잘 던지자 한 말이다.
카도쿠라는 SK 유니폼을 입고 한국 무대를 처음 밟던 때를 떠올리며 “아쉬운 게 정말 많다”고 했다. 그는 2008시즌이 끝나고 요미우리에서 방출됐다. 방출 얘기가 나돌 때부터 김 감독이 SK 입단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1월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컵스의 마이너리그팀과 계약했다가 다시 방출됐고 시즌 개막 후 4월 중순에야 마이크 존슨의 대체 용병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겨울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다 메이저리그를 꿈꾸다 한국으로 왔으니 스스로도 “그때는 진지하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그는 1월 초 일본 고지 스프링캠프 훈련에 처음부터 참가했다. 외국인 선수가 스프링캠프 훈련을 처음부터 함께하는 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기술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다만 “체력이 나도 놀랄 만큼 좋아져 구속이 올랐고 한국 타자들의 장단점을 알게 돼 불안감 없이 던지는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이유”라 말했다.
지금처럼 계속 잘 던지면 메이저리그 진출이나 일본으로의 복귀가 욕심나지 않을까. 그는 “지금 내 머릿속에 그런 게 들어 있으면 절대로 요즘처럼 던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20승과 2점대 평균자책, 그리고 아시아시리즈 우승은 선수로서 개인 목표이고 김 감독을 내 손으로 직접 헹가래 쳐 보는 건 꼭 한 번 이루고 싶은 소망이다”며 활짝 웃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카도쿠라 켄은? △생년월일: 1973년 7월 29일 △체격: 193cm, 90kg △혈액형: O형 △출신교: 일본 도호쿠후쿠시대 △가족: 부인 카도쿠라 다미에 씨와 2남1녀 △소속 팀: 일본 주니치(1996∼1999년) 긴테쓰(2000∼2003년) 요코하마(2004∼2006년) 요미우리(2007∼2008년), 미국 시카고 컵스(2009년), SK(2009년∼ ) △일본 프로야구 통산 성적: 76승 82패 10세이브, 평균자책 4.36 △주무기: 포크볼 △취미: 독서, 인터넷 서핑, 스도쿠(숫자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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