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SK 감독은 알고 있었을까. 20일 이상 길러온 수염을 깎게 만들 팀이 다름 아닌 넥센이라는 사실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팀은 상위권에 있는 두산이나 삼성, LG가 아니었다. 전날까지 7위이자 올 시즌 SK를 상대로 4전 전패를 당한 넥센이었다.
5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 전부터 넥센 선수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김 감독님이 면도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자”란 말을 주고받았다. 김 감독이 지난달 14일 한화전 승리 이후 “질 때까지 면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염두에 둔 말. SK는 한화전 이후 전날 넥센전까지 16연승 행진 중이었다. 넥센 주장 이숭용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연승은 어차피 깨지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깨야 한다면 우리가 해 보자”고 분위기를 북돋웠다.
경기 전만 해도 SK의 무난한 승리가 점쳐졌다. 이날 SK 선발투수는 4연승에 평균자책 0.29를 기록 중인 왼손 에이스 김광현이었다. 반면 넥센 선발은 1승 4패에 평균자책 5.59의 에드리안 번사이드.
하지만 번사이드는 이날 한국 무대 데뷔 후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 막강 SK 타선을 상대로 7과 3분의 1이닝 동안 안타는 4개밖에 맞지 않았고 4사구도 2개에 불과했다. 8회 선두 타자 최정에게 1점 홈런을 내준 게 옥에 티였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2km밖에 되지 않았지만 커브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컷 패스트볼을 골고루 섞어 던지며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넥센 타선은 잔루가 10개나 됐지만 결정적인 홈런 2방을 터뜨렸다. 더그 클락과 김민우는 4회와 5회 각각 좌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김광현을 무너뜨렸다. 2-1로 앞선 8회 1사 1루에서 마운드에 오른 손승락은 1과 3분의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값진 승리를 지켰다. 김성근 감독은 “(타자들이) 못 쳤다”고 짧게 소감을 밝혔다.
두산은 LG와의 잠실 라이벌전에서 최준석의 2점 홈런 등을 앞세워 4-2로 승리하며 3연패에서 벗어났다. 삼성은 채태인의 연타석 홈런 등 장단 21안타를 터뜨리며 롯데를 13-2로 대파했다. KIA는 한화에 4-0으로 이겼다.
어린이날인 이날 경기가 열린 4개 구장은 모두 만원을 이뤘다. 잠실 2만7000명과 문학 2만8000명을 비롯해 광주 1만3400명, 대구 1만 명 등 총 7만8400명의 관중이 야구의 재미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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