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훈련을 마치면 마운드 주변엔 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이 공을 박스에 주워 담는 건 주로 어린 선수들 몫입니다. 최근 문학에서 무심코 그 장면을 바라보다 약간 놀랐습니다. SK에서 꽤 고참급인 박정환(33)이 보였던 것입니다. 정근우 박재상 김강민 조동화 등 주전선수들도 예외가 아니겠죠. 심지어 무릎에 붕대를 칭칭 감은 나주환도 “형들 나가는데”라며 나섭니다. 김강민에게 물어봤더니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거라더군요. “팀 분위기 좋은데 이런 사소한 거 가지고 서로 말 나오면 힘들잖아요?”
#SK 좌완 셋업맨 정우람은 5일까지 SK의 30경기 중 20경기에 등판했습니다. 팀 최다등판은 물론이고 벌써 27.2이닝을 던졌으니 여름이 걱정될 법도 합니다. 그런데 정우람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우리 타자들에 비하면 고생도 아니죠. 또 포수 박경완 선배가 다리 절뚝거리면서 뛰는 걸 보면 아무 말 못하게 돼요. 그리고 불펜에서 던지고 싶어도 못 나오는 투수들 마음 생각하면 던져야지요.”
#SK의 연승은 SK 선수들조차 이유를 딱 꼬집어 설명하지 못할 만큼 불가사의합니다. 객관적으로 그 정도 전력은 아니니까요. 그 이유에 관해 김성근 감독은 짤막하지만 아주 음미할 만한 말을 하더군요. “앞에선 박경완, 뒤에선 김재현 아닌가?” 박경완이야 보이는 것이니까 새삼스럽지 않지만 김재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번쩍했습니다. 5일까지 김재현의 타율은 0.229입니다. “창피해서 인터뷰도 못 하겠다”고 합니다. 그 자존심에 그럴 만도 하겠죠. 이런 김재현이 시즌 초 팀이 잠깐 주춤하자 주장으로서 팀 미팅을 소집했었답니다. 당시 타율이 1할4푼대였는데도요. 선발로 못 나오고 대타로나 나와도, 안 보이는 데서 후배들을 다독이고 분위기를 이끌고 있었던 겁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감독에게 고참은 짐스런 존재입니다. 일종의 기득권일 테니까요. SK의 고참들은 그 특권을 일정부분 자발적으로 버린 셈입니다. 흔히 SK야구를 데이터야구라 하죠. 그래서 혹시 다른 팀 감독님이 ‘아, 우리도 SK처럼 운용하면 되겠군’ 생각하면 낭패입니다. 인간의 자발성은 숫자나 전략 이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