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실책도 타석에서 만회하면 된다” 넥센전 결승 솔로…첫 두자릿수 대포항상 미완의 대기였다. 프리 배팅 때는 담장 너머로 펑펑 홈런 타구를 날렸지만, 실전에는 쉽사리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포수에서 외야수, 1루수, 지명타자까지. 사글세를 전전하듯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셋방살이에는 눈치가 보인다. 혹시라도 수비에서 실책을 하면, 가슴 속이 조마조마. 타석에서도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리고 8년. 마침내 두산 이성열(26)이 우뚝 섰다.
1일 잠실 넥센전. 5월27일 롯데 전에서 시즌9호 홈런을 친 뒤 4번째 경기였다.‘두 자릿수 홈런’에 대한 일말의 부담이 이성열의 머릿속을 스쳤다. “2005년에도 그랬거든요. 딱 9개를 치고 그걸로 끝이었어요.” 하지만 두산의 붙박이로 자리 잡은 그에게 심리적 압박 따위는 과거의 일이었다.
1-1로 맞선 2회말 1사 후. 넥센 선발 금민철의 바깥쪽 높은 직구를 무리 없이 밀어 친 공은 좌중간을 갈라 외야 담장 너머로 꽂혔다. 120m짜리 결승 솔로 홈런. 시즌 10호(공동5위)였다.
이성열은 “계속 경기를 나갈 수 있게 되니,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쫓기지 않고 기다리다 보니 자신의 공이 들어온다. 아직도 뛰어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수비. 하지만 실책 하나를 해도 이제 ‘타석에서 만회하면 된다’고 스스로 배짱을 부린다.
“개인 목표는 타율 0.280∼0.290에 타점 80∼90개요.” 홈런 숫자보다 타율을 먼저 얘기한 것은 “정확하고 가볍게 맞힐수록 장타가 나온다”는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체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힘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있다.
이제 충분히 “20홈런” 정도의 목표를 밝힐 수 있음에도 이성열은 “전 경기(133) 출장을 하고 싶다”고 했다. 벤치 신세에 한이 맺혀 그라운드에 서는 것 자체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얼굴을 보려고 빼곡히 모인 팬들 너머로, 이성열은 “LG 시절 동료인 왈론드의 승리에 도움을 줘 기쁘다”며 짐을 꾸렸다.잠실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