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기자의 킥오프]‘2002 추억’ 되살려준 스페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5일 03시 00분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등 세계적인 강호와 평가전을 잡았다.

당시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팀에 완패하면 자신감을 잃는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강행했다. 잉글랜드와 1-1 무승부, 프랑스와 선전 끝에 2-3으로 졌지만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세계적인 스타들과 대등한 경기를 치른 태극전사들은 자신감이 충만해 신들린 듯 플레이해 16강을 넘어 4강까지 치고 올랐다.

4일 열린 스페인과의 평가전(0-1 패)은 8년 전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스페인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로 이번 대회 우승후보 0순위. 게다가 한국과 질긴 악연이 있다. 한국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 스페인에 황보관의 캐넌 슛 한방만 보여주고 1-3으로 졌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땐 0-2로 뒤지다 후반 막판 홍명보 서정원의 연속 골로 2-2로 간신히 비겼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8강에서 만나 승부차기 끝에 한국이 5-3으로 이겼지만 일부에서 ‘심판이 도와줬다’고 주장해 한국의 4강 신화를 깎아내렸다. 스페인은 ‘희생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좋지 않은 관계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경기를 치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태극전사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세계 최강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팀의 핵 박지성이 허벅지 통증으로 뛰지 않았지만 미드필드에서 짧은 패스로 스페인을 압박해 좋은 찬스를 많이 만들었다. 골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스페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도 여럿 있었다.

벤치에서 선수들의 선전을 지켜본 박지성은 “2002년의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골키퍼 이운재도 “한일 월드컵 때와 비슷하다. 본선을 앞두고 강팀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점은 분명 자신감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심리학자들은 ‘좋은 경기를 하기 위해선 과거 잘했던 기억을 늘 상기하며 플레이하라’고 한다. ‘무적함대’ 스페인은 한국 선수들에게 분명 좋은 추억을 전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