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김광현은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이라는 말을 누차 반복했다. 솔직히 노히트노런이 그토록 희귀하고 대단한 기록인지 당시엔 몰랐다고. 그래서 후회는 남지만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털기로 했다. “이제 이 얘기는 끝냈으면”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그러나 10일밤부터 오는 전화마다, 이날 야구장에 나오니 만나는 얼굴마다 그 얘기를 꺼내니 안 떠오를 재간이 없었다. “이 정도 관심일 줄 몰랐다”고도 했다.
김광현은 “볼카운트 2-2에서 맞더라도 신명철(볼넷)과 승부했어야 했는데 힘이 안 들어갈 수 없었다”고 짧게 복기했다. “한국시리즈도 집중하면 관중들 환호성이 안 들리는데 어제는 8회부터 들렸다”고 힘이 들어간 자체분석을 하기도. 그래서 “기회가 또 오면 하던 대로 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다 털고) 다음경기 준비”가 김광현의 첫째 목표다.
김광현의 승리를 지켜준 이승호는 “올 시즌 세이브 중에서 제일 살 떨렸다. 만약 승리 날렸으면 광현이 얼굴도 못 봤을 것”이라며 웃었다. 내심 불펜에서 김광현의 기록 달성을 의심치 않았기에 더 곤혹스런 등판이기도 했다. 이승호는 “요즘 나만 올라가면 동료들이 심장마비 걸릴 것 같단다. 어제도 (삼성타자가)가만 있었으면 밀어내기 볼넷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 우리가 더 아쉬워
삼성 선동열 감독은 “노히트노런을 당하는구나 생각했다”라며 웃었다. ‘안타를 친 최형우에게 격려금이라도 줘야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역전해서 이겼으면 몰라도 졌잖아”라면서 뒤집지 못한 미련을 슬쩍 내비쳤다.
현역 시절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던 선 감독은 “김광현을 많이 상대해봤지만 슬라이더와 컨트롤이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였다”고 평했다. 다만 박빙승부라 기록이 깨진 상황에서 김광현을 교체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봤다. 묘하게도 선 감독은 2008년 KIA 이범석 상대로도 9회 2사 후 노히트노런을 깬 바 있다.
‘큰일’을 해낸 최형우는 “김광현 공이 너무 좋아 꼭 안타를 쳐야겠다는 생각은 안했다. 그냥 ‘너 공 좋다’고 인정하고, 부담감 없이 타석에 선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슬라이더가 너무 좋아 그것만 노리고 들어갔는데 실투가 나왔다. 배트 살짝 위에만 맞았으면 홈런이었는데 안타를 쳐서 노히트노런 깬 것보다 동점홈런을 치지 못한 게 더 아쉬웠다”고 비화를 들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