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가 울리자 경기장은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과 부부젤라(나팔 소리가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전통 악기) 소리가 뒤섞여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태극전사들은 순간 긴장한 듯 몸이 굳었다. 전반 초반 상대 코너킥 찬스에서 위협적인 상황까지 연출되자 표정은 더욱 굳었다.
이 때 한 선수가 나서 그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차분히 하자는 의미로 손짓을 하며 동료들을 다독였다. 전반 7분 과감한 돌파로 상대 오른쪽 측면을 무너뜨리며 프리킥을 얻어 냈다. 이 프리킥은 그대로 골로 연결되며 2-0 승리의 디딤돌이 됐다.
주인공은 '초롱이' 이영표(알 힐랄). 이영표는 12일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왼쪽 측면 수비수로 나와 승리의 숨은 주역이 됐다.
수비에선 침착하고 안정감 있는 플레이로 상대 공격을 꽁꽁 묶었다. 다른 수비수들과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하며 수비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영표(177cm)보다 키가 10cm이상 큰 그리스 오른쪽 측면공격수 앙겔로스 하리스테아스(뉘른베르크·192cm)는 그의 노련한 수비에 공 한번 제대로 잡지 못했다. 하리스테아스는 결국 후반 15분 교체됐다.
공격에서도 돋보였다. 경기 내내 위력적인 오버래핑으로 상대를 흔들었다. 그리스 공격수들은 전반 초반 이영표의 오버래핑이 이어지자 마음 놓고 공격에 치중하지 못했다. 33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부지런한 플레이 역시 돋보였다.
경기가 끝난 뒤 이영표는 언제나 그랬듯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담담하게 그라운드를 걸어 나왔다.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에 환한 미소와 박수로 화답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평소 훈련에서 이영표와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눈다. 그가 수비 전술의 핵심이자 젊은 선수들의 정신적인 지주여서다. 숨은 캡틴 이영표의 믿음직스러움에 허 감독은 이날 다시 한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