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에서는 32개국 선수단 만 경쟁하는 게 아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달하기 위한 현장에 날아온 각국 취재진들의 그라운드 밖 전쟁도 뜨겁다. 상대국 기자들은 때론 아주 고급 정보원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아공에 와 있는 외신 기자들이 한국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무엇일까? ○역시 ‘지성 팍’
외신들의 관심 1순위는 대표팀 주장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세계 최고의 클럽에서 뛰고 있다는 점이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기자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묻는 게 ‘지승 팍’ 소식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 경기에 어느 포지션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박지성이 주장이고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그를 중심으로 팀 전술이 짜여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뛰어난 체력과 활동량을 바탕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측면 뿐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로서도 몇 차례 진가를 발휘한 영향도 있는 것 같아 한국기자들은 어깨를 들썩인다.
또 하나, “훈련장에서 박지성 인터뷰는 언제 들을 수 있느냐”는 투정 섞인 물음도 꽤 있다. 참고로 박지성은 남아공 입성 후 경기 전날 실시하는 세 차례 공식 기자회견 때 허정무 감독과 함께 참석했고, 훈련장에서는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모든 선수들에게 골고루 인터뷰 기회를 주려는 허 감독의 배려 때문이다.
○예상 베스트 11은?
사실 기자들끼리 가장 많이 공유하는 정보가 바로 서로의 예상 베스트 11이다. 오랜 기간 해당 대표팀을 취재해 온 기자들의 조언을 들으면 선발 라인업을 예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월드컵 현장에서 직접 본 한국대표팀은 아직 세계축구의 변방에 가깝다. 한국 소식에 대해 빼곡히 알고 있는 외신 기자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그들이 한국의 베스트 11을 잘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스타디움 안에 위치한 미디어센터에는 포메이션을 알려주는 한국 기자와 이를 열심히 받아 적는 외신 기자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혹시 “주요 기밀을 유출하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한 상대국 베스트 11을 해당 감독들에게 알려주는 일은 거의 없다. 감독 정도면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대비책까지 다 마련했을 테니까.
○성? 이름?
아직도 외신 기자들은 성을 앞에 쓰는 우리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주영 팍이 맞느냐 팍 주영이 맞느냐, 청룡 리냐 리 청용이냐”는 아주 원초적인 질문을 하는 외신 기자들도 꽤 있다.
○허정무가 누구?
최근 세 차례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들은 모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1998년 차범근 감독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영웅 대접을 받는다. 2002년 히딩크와 2006년 아드보카트는 이미 지도자로서 ‘명장’ 계열에 올라선 세계적인 지도자라는 점 때문에 묻는 이가 거의 없었다.
반면 허정무 감독은 아직 좀 생소한 지도자다. 특히 한국이 그리스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 뒤 허 감독에 대한 질문이 쇄도했다.
“한국의 최고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선수와 지도자로서 모두 성공했다. 특히 유망주 발굴과 선수단을 하나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답해주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허 감독의 명성도 한층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수비축구 한국?
“수비에 치중하는 전술로 나오지 않겠느냐?”
아르헨티나 전을 앞두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다. 아르헨티나가 워낙 막강한 팀이다 보니 외신기자들에게는 한국이 꽁꽁 걸어 잠그는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아르헨티나 전 대패 후 공격적으로 나온 허 감독의 전략에 문제가 있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던 것을 봐도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또 북한이 수비 후 역습을 즐겨 사용한다는 게 알려져서 한국 역시 같은 패턴으로 나오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외신 기자들도 간혹 있었다.
더반(남아공) |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사진 |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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