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90년대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린 홍콩 액션 느와르 영화 제목이 아니다.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박주영(25·AS모나코)의 '양박'에 이청용(22·볼턴)과 기성용(21·셀틱)의 '쌍용'을 묶은 말이다. 이 단어는 어느새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한국의 원정 사상 최초 16강 진출을 이끈 이들 유럽파 4인방의 활약상은 스크린 속을 종횡무진 누비던 홍콩 액션 배우의 화려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세계 축구의 중심 무대인 잉글랜드(박지성·이청용)와 스코틀랜드(기성용) 프랑스(박주영)에서 뛰고 있는 이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무대도 이미 안방처럼 편안해졌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큰 대회만 나가면 주눅 들어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던 예전 한국 축구의 모습을 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캡틴 박지성은 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를 호령한 차범근(현 SBS해설위원)의 계보를 잇는 한국 축구의 선구자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을 거쳐 2005년 세계적인 명문 맨유에 입단해 현재까지 주축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 자리를 굳혔다. 양박쌍용 가운데 가장 먼저 유럽 프로 무대를 밟은 박지성은 12일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30m 폭풍 드리블로 쐐기 골을 넣으며 세계 축구팬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지성은 이 골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3회 연속 득점에 성공했고, 외신들로부터 '탈 아시아급 선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16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나이지리아 전에서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산소 탱크를 가동하며 강철 같은 체력으로 경기를 진두지휘했다.
박주영도 이번 대회를 통해 진가를 입증했다. 아르헨티나 전에선 자책골을 기록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경기마다 최전방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나이지리아 전에선 결정적인 추가골까지 넣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현재 한국에 주영이만큼 '킬러 본능'을 갖춘 공격수는 없다"며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박주영은 허정무호 출범 이후 A매치에서 가장 많은 골(9골)을 기록하고 있다. 월드컵 무대를 처음 밟은 쌍용 이청용과 기성용도 매 경기 거침없는 움직임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며 한국 축구의 매운 맛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청용은 대회 개막전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로부터 남아공 월드컵에서 떠오를 스타 11명에 이름을 올렸다. 스포츠 전문 매체 '블리처 리포트'도 남아공 월드컵에서 강한 인상을 남길 영플레이어 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그를 꼽았다. 이청용은 그리스 전에선 위력적인 돌파와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 측면을 무력화했고, 아르헨티나 전에선 득점까지 기록하며 이러한 기대에 부응했다.
'중원의 사령관' 기성용 역시 한국의 선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리스와 나이지리아 전에서 프리킥으로 이정수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16강 진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또 경기마다 특유의 감각적인 패스로 경기를 조율하며 중원을 이끌고 있다.
양박쌍용은 약속이나 한 듯 "16강에 올랐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국 축구를 이끄는 이들이 어떤 활약으로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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