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룡 조별리그 통해 거미 손으로 우뚝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3일 05시 31분



약간 내려간 눈매에 선한 인상. 수줍은 듯 해맑은 웃음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하지만 녹색 그라운드에만 나서면 달라진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날렵한 몸동작은 먹이를 앞에 둔 맹수를 연상케 한다.

'순둥이' 정성룡(성남 일화) 얘기다.

대표팀의 2인자 골키퍼였던 정성룡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리그를 통해 최고 골키퍼 계보를 잇는 주역으로 우뚝 섰다. 정성룡은 23일 남아공 더반의 모저스 마비다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안정적인 방어로 확실한 골키퍼 세대교체를 알렸다.
앞서 1, 2차전에서에서도 백전노장 이운재(수원)를 제치고 선발로 나와 결정적인 선방을 9개나 하며 활약을 펼친 정성룡은 이날도 나이지리아의 무서운 공격을 막아내며 허정무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정성룡의 최대 강점은 뛰어난 순발력. 최근 동아일보가 조사한 'K리그 골키퍼 코치 10명 이 꼽는 최고 순발력을 갖춘 골키퍼' 항목에서도 그는 9명으로부터 1위 표를 얻었다. 한국 골키퍼로는 보기 드물게 큰 키(190cm)에 긴 팔을 가진데다 높은 점프력을 지닌 것도 그의 무기. 그리스 전에선 장신 공격수들을 상대로 공중 볼을 안정적으로 걷어내며 그 진가를 발휘했다. 최근 컨디션도 절정이다.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에서 경기당 최소 실점을 기록하고 있는 그는 경기마다 두, 세 차례 씩 결정적인 선방으로 성남의 돌풍을 이끌고 있다. 성남 신태용 감독은 "최근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이 갖는 그에 대한 믿음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성남 최고의 '믿을맨'"이라며 극찬했다.
2003년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정성룡은 김병지(현재 경남FC)의 그늘에 가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김병지가 FC서울로 이적하며 기회를 얻었다.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알린 건 2008년 1월 성남으로 이적하고부터. 그해 1월 30일에는 그를 눈여겨보던 허 감독의 부름을 받아 칠레와의 평가전 때 A매치 신고식까지 치렀다.

사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 골문을 지킬 수문장으로 이운재를 꼽는 데 이견이 없었다. 월드컵이란 큰 무대에서 침착하고 경험 많은 이운재를 대신한 카드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 하지만 최근 이운재가 K리그와 대표팀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세대교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꾸준히 준비를 하며 기다린 정성룡은 그 대안으로 떠올랐고 평가전에서 잇따라 좋은 활약을 펼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는 최고의 축제 월드컵까지 그의 무대로 만들었다.

25세에 불과한 그는 아직 젊다. 이번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한국 축구 수문장 계보를 예약한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더반=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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