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출전한 한국대표팀과 난 인연이 없는 것 같다. 8년 전에는 대회가 개막되기 전에 준결승전 입장권을 미리 사뒀는데, 그게 한국 경기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은 독일의 미하엘 발라크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본선에서 첫 패배를 당했다.
3등석에 앉아 있는 관객 한 명이랑 대표팀의 경기력이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첫 경험은 아니었다.
2006 독일월드컵 때에도 기회는 왔다.
우리 편집부(FIFA.COM)는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 미디어센터에 있었는데, 한국의 조별 리그 경기가 열리는 프랑크푸르트와 라이프치히로 한국 에디터가 한 명씩 파견될 예정이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4년 전의 징크스가 떠오르기도 했고, 대표팀에 누가 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어쨌든 나보다 유능한 동료들을 대신 보내고 난 16강 이후를 책임지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국이 토고를 상대로 역전승, 우승 후보 프랑스와 무승부를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3차전 스위스 전 패배 때문에 결국 내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은 새로운 경험이다.
우리 웹사이트에 한국어 채널이 없어졌기 때문에 난 루스텐버그로 파견돼 로열 바포켕 경기장을 전담하게 됐다. 거기서 열린 경기들을 취재하느라 한국대표팀 훈련은 물론이고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조별 리그 경기조차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내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이 극적으로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원래 난 루스텐버그에서 미국과 가나의 16강전까지 취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본부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포트 엘리자베스로 이동해서 한국과 우루과이 전(16강)을 커버하라는 지시였다.
야단났다. 요하네스버그 공항으로 출발하는 차량이 금요일 새벽 4시 반, 하지만 그 전날 밤 덴마크-일본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새벽 1시였다. 잠이 들면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밤을 새고 출발했다.
경기 전날 오후에 넬슨 만델라 베이 경기장에 도착했다. 피곤한 것보다 앞서 언급한 그 악연에 대한 걱정이 컸다. 하지만 기자회견에 나온 허정무 감독과 주장 박지성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게다가 포트 엘리자베스는 한국이 그리스를 2-0으로 물리치며 기분 좋게 출발했던 바로 그 곳이 아니던가.
그러나, ‘역시나’였다. 8년 만에 내가 지켜본 한국의 월드컵 경기는 아쉬운 패배로 끝났다. 골대 불운, 거친 잔디, 그리고 하프타임부터 쏟아진 폭우, 변명의 여지는 많았다.
경기 후 슬픈 얼굴로 기자들과 만난 이영표는 누군가 책임을 묻는다면 수비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두 내 탓이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FIFA.COM 에디터 2002 월드컵 때 서울월드컵 경기장 관중안내를 맡으면서 시작된 축구와의 인연. 이후 인터넷에서 축구기사를 쓰며 축구를 종교처럼 믿고 있다.국제축구의 흐름을 꿰뚫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