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경북 영천체육관. 홍팀 중량급 선수가 묵직한 돌려차기를 날리자 키가 20cm 이상 작은 청팀 경량급 선수가 날렵한 뒤차기로 응수해 2점을 획득했다. 힘과 스피드의 대결에서 스피드가 승리하는 순간 플로어 옆에서 지켜보던 홍팀 감독이 교체를 의미하는 빨간 깃발을 들어올렸다. 중량급 선수가 머쓱한 표정으로 내려가자 이번엔 날렵한 경량급 선수가 등장했다. 청팀 경량급 선수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청팀 감독도 새로운 교체 카드로 응수했다.
경기 내내 감독과 동료 선수들은 목청이 터져라 작전을 지시했다. 관중석의 열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발차기가 오갈 때마다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한 40대 여성은 “어제 우연히 단체전 경기를 본 뒤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체육관을 찾았다. 태권도가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운동인 줄 몰랐다”며 활짝 웃었다.
제1회 국제클럽오픈태권도대회(한국실업태권도연맹, 영천시, 경북태권도협회 공동 주최)가 영천에서 열렸다. 60여 개국에서 온 3000여 명의 선수가 9∼13일 태권도로 ‘별의 도시’ 영천을 뜨겁게 달궜다.
이번 대회의 백미는 역시 단체전. 그동안 실업대회에서 단체전을 이벤트 경기로 한 적은 있지만 국제대회로 격상시켜 본격적으로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미있는 태권도’란 대회 슬로건에 맞춰 규칙도 새롭게 다듬어졌다. 5인조의 경우 전반전엔 양팀에서 5명(선봉 전위 중견 후위 주장)이 차례로 나서 1분씩 실력을 겨뤘다. 단체전의 하이라이트는 후반전이었다. 10분 경기에서 선수 교체는 자유. 감독의 교체 신호에 따라 한 선수가 10분을 뛸 수도, 1초 만에 교체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양팀 간 치열한 전략싸움이 볼거리를 더했다. 단국대 태권도학과 이재구 코치는 “단체전에선 상대 선수가 자주 쓰는 발동작이나 습관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파악하면 경량급 선수도 중량급 선수를 쓰러뜨릴 수 있다”며 웃었다.
또 경기가 느슨해질 만하면 쉼 없이 선수가 교체돼 관객들의 흥미를 끌었다. 5초 안에 공격하지 않으면 경고를 주고 머리 공격 등에 점수를 후하게 준 것도 박진감 넘치는 태권도를 이끌어 낸 요인이란 평가. 김태일 실업연맹 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단체전에 대한 국내외 평가가 아주 좋다”며 “앞으로 더욱 발전시키면 국가 간 자존심을 겨루는 태권도 ‘월드리그’ 창설도 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천=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태권+마상무예… 2대2 겨루기… “아이디어 넘쳐요”▼
‘말을 탄 사람이 활을 쏜다. 도복을 입은 시범 단원이 품새 동작으로 능숙하게 활을 막아 낸다. 기마 무인과 태권 무인과의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한국실업태권도연맹이 구상 중인 태권도 콘텐츠 가운데 하나다. 태권도에 ‘재미’를 입히기 위한 실업연맹의 노력은 이번 국제클럽오픈태권도대회에서 단체전 등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하며 탄력을 받았다.
실업연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콘텐츠는 태권도와 마상무예(말을 탄 상태에서 창 검 활 등을 사용하는 전통무예)를 결합한 ‘태권마상무예’. 태권도의 화려한 동작과 마상무예의 역동성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태권도 시범이다.
팀별로 2명씩 동시에 출전해 겨루기를 하는 ‘2 대 2 겨루기’도 새로운 시도다. 2 대 2 겨루기는 실업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이미 몇 차례 선보여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다소 단조롭고 직선적인 공격 위주인 일대일 겨루기에 비해 여러 방향에서 입체적인 공격이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매력. 팀원끼리 호흡을 맞춰 협공을 할 수 있어 다양한 전략을 짜는 것도 가능하다. 좀 더 규칙을 정비해 부상의 위험성만 낮춘다면 대표 인기종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나와 겨루기로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격투 배틀’도 새롭게 구상 중인 콘텐츠. 실업연맹은 기존 사각 경기장보다 큰 원형경기장에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겠다는 생각이다.
이 밖에 태권도에 발레나 비보이 공연 등을 결합한 ‘퓨전 태권도 시범’ 등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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