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내파 고집 ‘6개월짜리’불신 불러 2. 정해성 코치 놓고 언론플레이 갈등 3. ‘협회 친분
후보 있다’ 내정설 솔솔 4. 조회장 “외국감독도 검토”…내분?
또 다시 ‘3류’ 소리를 듣게 됐다.
월드컵은 16강인데 축구행정은 여전히 바닥이다. 특히 차기 대표팀 감독 선정 작업은 그야말로 졸속의 극치다. 유력 후보들이 ‘한 나라 축구의 얼굴’이라는 대표팀 감독 자리를 줄줄이 마다하고 있다. 기술위원회(위원장 이회택)가 정한 기준에 조중연 축구협회장이 어깃장을 놓으며 내분 양상까지 보인다. 무엇 때문에 이 지경이 됐을까.
○첫 단추부터 잘 못 꿰다
기술위원회는 7일 “허정무 감독이 이뤄낸 성과를 바탕으로 국내 지도자가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도 될 것 같다”며 선을 그었다. 허 감독이 잘 했다고 무조건 국내 감독에게 맡긴다는 발상부터 문제였다. 패착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기술위는 1차 후보로 12∼13명을 정하고 각자의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했다. 무더기로 뽑은 1차 후보에 들지 못하면 X망신이라는 소리도 들렸지만, 다행히(?)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발표 이후 축구인들의 생각은 한결 같았다. 차기 감독은 ‘6개월짜리’라고 했다. 어차피 내년 1월 아시안 컵 까지만 지휘봉을 잡을 ‘희생양’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아시안 컵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낼 경우 불명예 퇴진도 감수해야한다.
더불어 2014브라질월드컵 감독 내정설도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독이 든 성배’를 들려 하겠는가. 기술위원회가 국내 지도자들이 잇따라 고사해 힘들다고 하지만 상황은 기술위원회가 만들지 않았을까.
사상 첫 원정월드컵 16강이 가져다준 자만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소문의 진원지는 기술위
유력했던 정해성 수석 코치가 고사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정 코치는 다음 달 스페인으로 연수를 떠나기로 최종 결심하고 축구협회 고위층과 기술위원회에 이를 통보했다. 하지만 이후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축구인들 사이에선 “(정 코치가) 한번 발을 빼보는 것이다. 어차피 계약할 것이다”는 내용이다.
진원지는 기술위원회다. 기술위원들은 정 코치를 설득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를 해왔다. 조만간 사인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를 일부 언론에 슬쩍 흘렸다. 얼토당토않은 소문에 당사자는 괴로워했고, 다른 후보들은 ‘예상했던 일’이라는 투로 받아들였다.
서로 불신이 쌓이는 상황에서 이런 소문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시쳇말로 씹을 수 있는 거리가 제공된 셈이다.
기술위원회가 스스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내정설의 진실
1주일 전부터는 내정설이 판을 쳤다.
축구협회와 돈독한 관계의 후보가 이미 내정됐다는 소문이 그럴싸하게 나돌았다. 아울러 후보가 5명으로 압축됐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이 두 가지 소문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4명은 들러리일 수밖에 없다. 후보들이 줄줄이 고사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내정됐다는 소문의 당사자는 단 한번도 기술위원회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서 억울해했다. 진실게임을 해야 할 판이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몰라도 후보들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가 압축됐다고 흘린 것을 보면 분명 구린내가 난다. 나름대로의 잔머리로 언론 플레이를 한 모양인데, 오히려 거대한 역풍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회장의 월권이 나온 배경
기술위원회가 정한 기준은 모호하다.
리더십, 축구철학 등이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지만, K리그 우승 경험 등 축구팬들이 납득할만한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했다. 이런 것이 없다보니 이리 떠보고 저리 떠보면서 시간만 보냈다.
아울러 내정설이 사실이 아니라면 좀 더 명확한 선을 그었다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조중연 회장까지 나서 외국인 감독까지 폭을 넓힌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닌가 추측된다.
조 회장은 국내외 감독을 막론하고 차기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질월드컵 예선을 통과하고 성공할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회장의 발언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월권으로 볼 수 있다. 기술위원회는 각급 대표팀 구성과 코칭스태프 인선, 소집 및 훈련, 경기 분석 결과 등 대표팀 운영에 관한 모든 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를 남긴다.
하지만 기술위원회의 일처리가 얼마나 엉망이었고, 축구팬들을 얼마나 실망시키고 있으면 이런 코멘트를 날렸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공개된 자리에서 회장이 할 수 있는 코멘트는 아니었다. 회장과 기술위원회의 내분으로 비춰지는 이유다. ○4년 뒤를 내다보는 감독 선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최고가 아닐까.
국내파든 외국인이든 구분을 두지 말고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다음 월드컵을 위해 4년의 장기 플랜을 갖는 것은 물론 차기 감독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 줘야한다.
그래서 서두르면 일을 망칠 수밖에 없다. 8월의 A매치 한 경기가 아니라 4년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솔직히 현재 기술위원회에 신뢰를 보내는 축구인은 드물다. 또 어떤 꿍꿍이를 갖고 있을까하는 불신만 팽배하다. 기술위원회는 구체적이면서 투명한 기준을 정한 뒤 옥석가리기를 해 나가면서 이런 불신을 없애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술위원회부터 자질 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