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을 놓고 대한축구협회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면, 1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 든다.
당시도 지금과 상황이 엇비슷했다. 1998년부터 대표팀을 맡은 허정무 감독이 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 목표인 8강 진출과 우승을 이루지 못한 채 2000년 11월 물러났다.
이렇게 되자 축구협회는 다급해졌다. 2002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했고 이를 위해 후임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술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감독 선임이 여의치 않자 해외에서 지도자를 찾는데 나선 롯은 협회 국제부였다.
정몽준 회장을 따라서 축구협회에 입성한 현대중공업 직원 중 국제 통이 중심이 돼 외국 지도자 물색에 나섰고, 결국 발렌시아, 레알 마드리드 등 명문 클럽과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거물'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할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 이후 대표팀 감독 선발은 사실상 국제부 몫이었다. 국제부에서 적당한 후보를 찾아내면 기술위원회가 추인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움베르투 코엘류(2003년 2월~2004년 4월), 요하네스 본프레레(2004년 6월~2005년 8월), 딕 아드보카트(2005년 10월~2006년 6월), 핌 베어벡(2006년 7월~2007년 8월) 등 외국 감독들이 한국대표팀을 거쳐 갔다.
이처럼 대표팀 감독 인사권을 국제부에 넘기다시피 했던 기술위원회가 권한을 되찾고 체면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2007년 허정무 감독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물러났던 허정무 감독은 "내 축구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온 힘을 쏟겠다"고 결연한 각오를 보였고 이런 그에게 기술위원회는 지휘봉을 맡겼다. 결국 허 감독은 월드컵 사상 원정 첫 16강이라는 대기록을 이룩하며 명예롭게 지휘봉을 반납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기술위원회는 "허 감독에 버금가는 경력과 실력을 갖춘 지도자를 뽑겠다. 차기 사령탑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맡길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차기 사령탑은 2014년까지 맡긴다'고 한 것은 지나치게 관대한 조건이 아닌가 싶다.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온 국민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명예로운 자리가 아닌가. 이런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으려면 "한국축구와 명예를 위해 다른 것은 포기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지를 갖고, 앞으로 4년 동안 끊임없이 검증 받을 각오를 하는 지도자라야 하지 않을까.
기술위원회가 꼽았던 대표팀 감독 후보들 중 여러 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공식적으로 감독직 고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렇게 되자 협회에서는 외국인 지도자까지 후보로 삼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남은 국내의 감독 후보들 중에도 '모든 것을 걸고 대표팀 감독으로 뛸 각오'가 된 지도자들이 분명히 있다. 명망 있는 축구 원로들로 구성된 기술위원회이니 만큼 틀림없이 적임자를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
히딩크 감독이 대성공을 거두며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었지만, 이후 거금을 들여 영입한 외국인 지도자들은 '제2의 히딩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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