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우승 우스트히즌 뒤엔 흑인 캐디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20일 03시 00분


남아공 인종 벽 헐고 흑백 ‘승리의 포옹’

그의 별명은 인기 만화 영화 주인공 슈렉이다. 큰 귀와 벌어진 앞니가 똑 닮았다. 남아공 무명 골퍼 루이 우스트히즌(28·사진). 그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슈렉의 피부색 같은 녹색 티셔츠를 입고 출전했다. 주체할 수 없는 괴력을 지닌 슈렉은 피오나 공주를 만나면서 신분과 외모를 뛰어넘어 인생의 전성기를 맞았다. 백인인 우스트히즌에게는 흑인 캐디 잭 라세고(26)가 그런 존재였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인종의 벽을 허물며 우정을 쌓아온 이들이 승리의 포옹을 했다.

19일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파72)에서 끝난 제139회 브리티시오픈 4라운드. 우스트히즌은 합계 16언더파로 우승했다. 2위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를 7타 차로 꺾은 완승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공 출신으로 골프의 성지에서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클라레 저그에 입을 맞췄다.

우스트히즌은 남아공 남단의 해안가 모셀베이에서 가난한 양치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테니스를 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유망주를 가르치던 어니 엘스 재단에 들어가 골프에 매달렸다. 주니어 시절 남아공 최강으로 이름을 날린 남아공 골프의 전설 게리 플레이어의 가방을 멨던 캐디 라세고와 7년 전 처음 만났다. 6남매의 장남인 라세고는 학비는 고사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일찍이 캐디의 길에 나서 선시티의 리조트에서 일하다 우스트히즌과 인연을 맺었다. 둘 다 겸손한 성격에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픈 열망이 뜨거웠기에 금세 친해졌다. 이렇다 할 성적이 없던 이 콤비는 3월 유럽투어 안달루시아오픈에서 첫 승을 거둔 데 이어 최고의 시즌을 맞았다. 우승 상금은 85만 파운드(약 16억 원)에 이른다.

소수 백인과 다수 흑인 사이의 인종 갈등이 심했던 남아공은 레인보 네이션으로 불린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존재하면서 서로 섞이기 힘든 모습을 보여서다. 필드에서 거의 보기 힘든 우스트히즌과 라세고 같은 흑백 콤비는 새로운 화합의 상징으로 주목을 받았다. 라세고는 “우리는 서로를 색깔이 아니라 인간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내 넬메어, 7개월 된 딸 야나와 기쁨을 나눈 우스트히즌은 “라세고는 가족이나 다름없다”며 고마워했다.

마침 우승을 결정지은 이날은 인류 화합에 헌신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92번째 생일이었기에 의미를 더했다. 우스트히즌은 “우연의 일치다. 마법에 걸린 듯한 하루”라며 감격스러워했다.

현재 상영되고 있는 슈렉 시리즈의 완결판인 ‘슈렉 포에버’는 평소 잊기 쉬운 가족의 소중함을 메시지로 전하며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우스트히즌의 우승 스토리도 그랬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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