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유라시아 횡단-⑧] 몽골을 경험하고 러시아를 그리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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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1일 16시 04분


■ 일정 : 몽골 사막(6월23일)-알타이(24일)-홋드(25일)
모두가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다행히 바이크는 운행을 할 수 있는 상태지만 앞부분 바퀴와 핸들을 제외한 부분은 모두가 떨어져 나갔다. 계기판과 윈드쉴드를 어떻게든 붙여보지만 오프로드가 주는 거친 진동에 무사할 지가 의문이었다. 한 시간 정도 안정을 취한 후 다시 출발했다.

둘째(김은석)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속도가 나지 않는 셋째(심재신)가, 그리고 막내(최태원)와 필자가 한참을 쉬었다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사이 내가 모래무덤에서 이전과 똑같은 사고를 한 번 더 경험했다. 속도는 훨씬 느렸지만 같은 어깨로 다시 떨어진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막내가 뒷수습을 하고 앞서 가던 은석이가 돌아와 앉아 쉬고 있는 나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듯 한 마디 던졌다.

"(손목 때문에) 더 이상 힘이 듭니다. 오늘은 여기서 캠핑을 하시죠."

시간은 이미 7시가 넘었지만 해는 아직 중천에 머물고 있었다. 더 이상 진행을 못해 미안하지만 내게는 천만다행이었다.

텐트를 치고 다들 저녁을 먹을 동안 난 누워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일단 통증이 심한 어깨를 만져봤다. 쇄골을 만져보니 어깨 쪽으로 윤곽이 이상했다. 만일 쇄골이 부러진 경우에 대비, 막내에게 부탁해 양어깨를 뒤에서 팔자로 붕대로 매어 놓았다. 그리고 옷을 벗어 몸의 우측을 살펴봤다.

사막엔 그늘이 없다
사막엔 그늘이 없다


▶ 해가 중천인데 달리지 못하고 야영을 택하다

허리춤에 통증과 피하출혈이 손바닥 크기였다. 우측 둔부에 찰과상을 입었고 목 근육도 놀랬는지 뻐근했다. 두통도 있었다. 헬멧의 상처를 보아하니 뇌진탕도 충분히 가능했다. 재수 없으면 뇌출혈도 있을 수 있었다. 정맥의 출혈이면 24시간 후에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곳은 전화도 안 되고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차가 지나가고 앞으로 150km 뒤로 150km를 가야 전화가 되는 마을이 나오는 곳이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일단 자자. 지금은 일단 쉬는 수밖에 없다. 손목이 아픈 재신이 주사약하고 먹을 약을 태원이를 통해 챙겨 주고 일단 잤다.

이날 막내가 이런 일기를 썼다.

#막내의 일기 "형들 대신 내가 다쳤으면…"

여행을 하면서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바이크의 연비체크와 하루이동거리 확인, 그리고 출발 전 기도다. 기도 내용에는 하루하루 팀원의 안전과 한국에 있는 가족과 여자친구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은 내용이 달랐다. 몽골에 들어서면서부터 형들이 많은 고난을 겪고 부상들이 심해지면서 오늘 아침에는 차라리 나에게 고난을 주십사 하고 기도를 드렸다. 형들이 너무 힘들어했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때와 같이 리어를 보고 앞서가는 형들을 주시하고 있는데 바이크가 요동을 치며 중심을 못 잡게 됐다. 겨우 정지해서 바이크를 살펴보니 앞 타이어에 펑크가 나있었다.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덕분에 앞서 잘 가고 있던 형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고 우리는 2시간30분이 지난 후에나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지만 2시간30분이라는 시간은 형들에게 더 큰 고통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는 차마다 세워서 물을 얻고, 도와주려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를 않고, 우리는 이렇게 고통을 서로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깊은 우정을 쌓아간다.


셋째 사고와 수습
셋째 사고와 수습


▶ 고통을 통해 깊어지는 우정

다음날 아침 아픈 곳이 좀 더 정돈되었다. 일단 두통이 많이 가라앉아 다행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운행이 가능한 듯 보였다.

"자 난 괜찮은 것 같아. 재신아 넌 손목이 어떠니?"
"어제보다는 괜찮은 것 같은데 달려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출발해 봅시다."

둘째가 로드를 섰다. 시속 60Km정도로 치고 나갔다. 길은 어제보다는 조금 단단하지만 군데군데 모래무덤이 마치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마치 철권게임에 체력표시가 한 칸밖에 남지 않은 싸움꾼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한 나의 머리 속은 온통, 한번만 더 넘어지면 '영원히 퇴장'이라는 절박감뿐이었다.

달리다가도 길의 바닥 색깔이 변하면 모랜가 싶어 감속하게 됐다. 감속하다 미끄러지는 로우사이드가 가속다가 뒤집어지는 하이사이드보다 천만 배 낫다. 속도가 늦어져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부상으로 퇴장 처리에 시간이 걸리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분을 달리면 뒤에 팀원과 거리가 너무 멀어져 버렸다.

셋째가 손목 통증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다리다 너무 오래도록 오지 않으면 되돌아갔다. 가면 앉아서 쉬고 있는 셋째는 멋쩍은 듯 우릴 보고 "자 가시죠" 이러기를 반복하다 결국 셋째를 앞세우고 천천히 가더라도 따라가기로 했다. 되돌아가는 위험과 수고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앞장선 셋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치고 나갔다. 아까 둘째의 속도와 다를 바 없었다. 일단 잘 달리니 다들 잔소리 안하기로 하고 따라갔다.

속도를 내서 달리니 다들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길가에 쌍봉낙타 무리와 말들까지 보였다. 초원으로 내쳐 달려 낙타몰이와 말몰이를 해봤다. 간만에 웃으며 사진도 찍고 분위기 전환도 했다. 다를 큰 실수 없이 250km정도를 달렸다.

9시쯤 되어 알타이에 도착했다. 예정상으로는 이틀 전에 도착했어야 하는 곳이다. 알타이는 제법 도시의 모양을 갖추었다. 입구에 보이는 모텔에 숙소를 잡았다. 모텔 카운터를 맡고 있는 아가씨가 한국말을 곧 잘 했다. 덕분에 불편함 없이 쉴 수가 있었다.

몽골은 물이 귀하다. 지금까지 이틀 동안 우리는 마실 물 부족으로 세수, 양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여행 전에는 "저는 머리만 감을 수 있으면 돼요" "저는 자기 전에 양치만 하면 돼요"라는 의기양양했던 표현은 모두 사치였다. 이제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 그러나 밖에는 찌는 듯한 햇살인데 이 지하수는 얼음보다 차갑다. 그렇게 씻고 싶어도 살을 에이는 차가움에 샤워도 못하고 겨우 물칠만 하고 끝냈다.

몽골사막에서 넘어진 바이크
몽골사막에서 넘어진 바이크


▶ 사고로 인해 지체된 일정, 오늘 홋드까지만 간다면…

다음 날 금요일 아침, 이날이 마지막 기회다. 오늘 350km앞에 있는 홋드까지 간다면 내일 토요일 국경을 빠져나가 러시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러시아로 들어가야 해서 러시아의 남은 일정이 너무 빠듯해진다.

로드는 다시 셋째가 맡았다. 전날 오후처럼만 달려주면 된다. 우리가 이날 갈 길은 전날 온 길보다 확실히 모래무덤이 줄고 길도 단단했다. 문제는 빨래판 같은 울퉁불퉁한 길이다.

높이와 너비가 한 뼘 정도 되는 둔덕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 속도를 줄이고 넘듯 하면 수십km의 빨래판 길을 제시간 안에 주파하기 어렵다. 물론 시속 60km 이상으로 진행을 하면 그 충격이 상당했다.

가져온 노트북의 액정이 깨지고 디지털카메라의 액정까지 파손되었다. 현지인에게 줄 선물로 가져온 볼펜은 나사선이 풀려 껍데기와 스프링 그리고 볼펜심으로 분해 되었다. 백미러의 나사도 풀려 덜렁덜렁 춤을 추었다. 쉬는 시간마다 조여도 달리기 시작하면 바로 풀릴 정도의 진동이었다.

길에서 만난 외국 라이더들도 한결같이 빨래판 길에 대해 한마디씩 불평을 던졌다. 이래서 몽골에서 라이딩 하다가 러시아 국경에서 아스팔트길을 만나면, 다들 아스팔트에 내려서 입맞춤을 하는가 보다. 우리도 빨리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성자 = 이민구 / 유라시아횡단 바이크팀 '투로드' 팀장
정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투로드팀의 몽골지역 행로
투로드팀의 몽골지역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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