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조광래 감독에게 바라는 딱 한가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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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7일 11시 37분


한국축구대표팀 신임 사령탑인 조광래(56) 감독. 현역 시절 그는 아주 '똑똑한' 선수였다.

경남의 명문인 진주고등학교를 축구 특기생이 아닌 시험을 쳐서 입학했던 그는 이런 뛰어난 두뇌를 바탕으로 폭넓은 시야와 정교한 패싱력을 선보이며 활약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은 '컴퓨터 링커'.

1987년 은퇴 후 부산 연고의 대우 로열즈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공부하는 지도자'로 불렸다.

1993년 조 감독이 대우 사령탑을 맡고 있을 때 그의 집에 가 본 필자가 놀란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커다란 방을 가득 채운 수백 개의 비디오였다. 조 감독은 당시만 해도 구하기 힘든 각국 축구대표팀이나 유럽 프로축구리그의 경기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비치해 놓고 틈만 나면 이를 보면서 열심히 축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미 이때부터 조 감독은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 사커를 기본으로 정교한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는 축구가 아름답게 이기는 축구"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한 '무적함대' 스페인을 보면 딱 들어맞는다.

이런 '공부하는 지도자'인 조 감독은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본다.

필자가 생각하는 축구대표팀 감독의 자격 조건 4가지 중 조 감독은 프로축구 K리그 감독을 해본 지도자이며, 명예를 존중하고 도덕성이 있는 지도자이자 언론과 소통을 잘하는 지도자라는 3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

조 감독은 대우와 수원 삼성, 안양 LG, FC 서울 등을 거치며 K리그에서 우승과 준우승, 컵대회 우승 등 여러 차례 굵직한 성적을 거뒀고, 2007년 시민구단인 경남 FC를 맡은 뒤로는 어린 무명선수를 키워내 무패행진을 펼친 덕에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조광래 감독 현역시절(가운데)
조광래 감독 현역시절(가운데)

또한 조 감독은 그라운드 밖에서는 사소한 잡음조차 일으킨 적이 없으며, 기자들과도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지도자 중의 한명으로 꼽힌다.

이런 조 감독이지만 자격 조건에서 한 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 그것은 조 감독이 파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축구계에도 현 대한축구협회 집행부을 위주로 한 '여당'이 있고, 이에 맞서 축구 개혁을 부르짖는 '야당'이 존재한다. 이런 파벌은 주로 축구협회 회장 선거가 있을 때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데 조 감독은 그동안 주로 '야당 인사'로 활동해 왔다.

그런데 '4800만 국민의 주목을 받는'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런 파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여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다. 뛰어난 두뇌를 가진 조 감독이 이런 점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수 십 년 동안 맺어온 여러 관계들을 조 감독이 과감히 끊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조 감독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첫 기자회견에서 "학연 지연 등을 따지지 않고 선수를 선발하고 대표팀을 운영하겠다. 축구인들의 목소리도 경청하겠다. 모든 사람들이 감시자라고 생각하며 성실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탈 파벌'을 선언했다.

그의 각오대로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향해 닻을 올린 '조광래 호'의 순조로운 항해를 위해서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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