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최동수 안치용 권용관 이재영)와 SK(박현준 김선규 윤상균)의 4 대 3 트레이드가 단행된 28일. 17년간 몸담았던 LG에서 SK로 팀을 옮기게 된 최동수(39)는 SK 김성근 감독에게 인사차 전화를 했다. “감독님, 이따 운동장에서 뵙겠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경기고로 와”였다. 이적 첫날부터 최동수는 SK의 특타조에 포함돼 경기고에서 땀을 흘렸다. 아직 연습복도 지급받지 않아 윤상균이 남기고 간 옷을 빌려 입었다.
SK 민경삼 단장은 “이번 트레이드의 핵심은 안치용”이라고 했지만 김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 2 대 2로 시작했던 양 구단 간 트레이드 협상의 막바지에 김 감독은 “최동수를 데려왔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4 대 3의 대형 트레이드는 이렇게 이뤄졌다.
경기고에서 만난 김 감독은 최동수의 활용 방안에 대해 “사실 오래전부터 데려오고 싶었다. 우리 팀의 4번을 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우리 타선에는 파워 있는 오른손 타자가 부족하다. 그동안 LG를 상대하면서 최동수의 해결사 기질에 여러 번 당했다. 컨디션이 조금 올라오면 4번 타자로 기용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28일 LG전에서 최동수를 8번 타자로 기용했고, 최동수는 6회 3점 홈런을 치며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자 29일 경기에서는 곧바로 4번 타자로 내세웠다.
여기서 볼 수 있듯 김 감독과 최동수는 단순한 사제 관계 이상이다. LG 시절 백업 선수로 전전하며 은퇴 위기까지 몰렸던 최동수를 주전으로 일으켜 세운 게 바로 김 감독이다. 2001년 LG 감독으로 부임한 김 감독은 그해 제주도에서 열린 마무리 캠프에서 말 그대로 ‘지옥 훈련’을 했다. 김 감독은 “당시 죽기 살기로 훈련시켰다. 많은 선수가 떨어져 나갔다. 끝까지 살아남은 게 최동수와 권용관 정도였다”고 했다.
최동수도 “하도 방망이를 휘둘러 손바닥이 피와 고름투성이였다. 장갑이 잘 벗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루에 6000∼7000번은 휘둘렀을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뒤 최동수는 약점이던 변화구에 대한 적응에 성공했고 이후 10년간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시 찾아온 은퇴 위기에서 김 감독은 최동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생존과 보은을 위한 공은 이제 최동수에게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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