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유리하고 선발 안될땐 불펜 활용도 매력 1군무대 곧바로 통할 신인투수 자원 절대부족 선동열 “이기려면 막아야지…난 투수만 뽑아”
▶ 용병타자 딜레마
야구수준 높아져 홈런 30개 칠 용병 잘 없어 작전수행 능력 부족·투수 보다 기복도 심해 로이스터 “타자 성공 못하는 이유 노력부족”
농구는 용병 농사가 중대사다. 올해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용병 드래프트 현장에 KBL 10개 구단 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것도 그 비중을 반증한다. 이에 비해 야구는 용병 비중이 갈수록 하락 추세다.
심지어 ‘육성용병’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 용병 무용론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보고 배울 것이 더 이상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용병을 잘 뽑는다고 우승하는 것은 아니지만 용병을 잘못 뽑아놓고 우승할 수는 없는 것이 프로야구다.
용병 영입을 통해 좁게는 8개 구단이 취약 포지션을 비교적 싼 값에 보강하고, 넓게는 리그 전체의 평준화를 꾀할 수 있다. 그래서 구단들은 주어진 용병 쿼터 2명을 두고 누굴 택할지에 앞서 어느 포지션으로 할지부터 따지는 것이 상식적 수순이다. 용병이 팀 플랜의 굵직한 조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 역사
그럼 투수를 뽑는 편이 나을까? 아니면 타자가 유리할까? 팀 마다 사정이 다르고, 선수마다 실력이나 궁합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역대 용병 스카우트의 궤적을 살펴보면 아주 흥미로운 ‘법칙’이 발견된다.
용병 제도를 처음 도입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총 12명의 용병 중 4명이 투수였고, 8명이 야수였다. 이런 흐름은 갈수록 강화돼 1999년에는 4명:14명, 2000년에는 5명:23명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최초로 2001년 투수가 24명, 야수가 15명으로 일시적으로 역전됐다. 이후 2002∼2004년 투수:야수 비율이 거의 1:1의 균형을 맞추다가 2005년부터 투수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 왜 용병=투수인가?
여기서 두 가지 궁금증과 마주한다. 첫째, 왜 한국 구단들은 용병을 뽑을 때 투수부터 찾을까? 예전엔 안 그랬는데 말이다.
이 문제를 두고 4일 삼성 선동열 감독에게 물었더니 ‘왜 당연한 소리를 묻는가’라는 표정이었다. 용병을 타자로 뽑는 것은 거의 비상식내지는 잘못이라는 어투에 가까웠다. 요약하자면 ‘감독은 이겨야 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비가 제일 중요하다. 그 수비의 요체는 투수력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투수든 타자든 용병 수준이 한국 선수들을 압도하지 못하는 형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SK 민경삼 단장도 용병은 투수가 나은가, 타자가 나은가에 관해 “간단하다”고 했다. ‘어느 팀이나 투수가 부족하지 않는가. 야수는 트레이드라도 해서 어떻게든 메울 수 있지만 투수는 언제나 희소하다. 또 투수는 다다익선이다.’ 타고투저 흐름에 변화가 일지 않는 한, 용병을 투수로 -가급적 선발로- 고르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논리다.
이에 더해서 숨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불확실성이 큰 용병 스카우트의 성격상, 늘 실패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데 이런 안 좋은 시나리오에서도 투수 쪽이 그나마 내상이 덜하다는 관점이다. 아무리 분석을 많이 하고, 면밀히 관찰해도 경험적으로 성공 케이스보다 실패 케이스가 더 많은데, 이럴 때 용병 투수는 실패하면 불펜으로나 하다못해 패전처리로라도 기용이 가능하지만 용병 타자는 안 되면 무용지물에 가깝다.
이어서 두 번째 궁금증, 왜 프로야구는 용병 타자를 외면하는가? 복수의 용병 영입 관계자들은 “야수의 적응이 더 힘들다”고 의견을 모았다. 스트라이크존이 다르고, 무엇보다 볼 배합이 달라 용병 타자들이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견해다.
힘의 승부에 치중하는 미국이나 중남미 야구와 달리 아시아권은 유인하고, 역으로 가는 볼배합을 구사한다. SK 창단부터 작년까지 용병 영입 실무에 관여했던 김현수 매니저는 유일한 타자용병 가르시아를 ‘예외적 존재’라 규정한다.
“가르시아는 사실 당장 일본 가서도 해볼만한 타자다. 삼진이 많아도 알고 보면 콘택트히터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자기 스윙을 하는 용병이다.” 용병타자에게 한국투수의 몸쪽 싱커(특히 잠수함), 허를 찌르는 완급조절은 이질적이고 생경하다.
● 소수설, 그러나….
김 매니저는 “지금 트리플A에서 4할에 20홈런을 치는 타자도 있는데 한국 구단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묻지마 투수 영입’ 정책에 따라 이제 ‘타자는 아무리 뛰어나도 안 뽑는다’는 데까지 이른 형국이다.
이에 관해 롯데 로이스터 감독은 이렇게 지적한다. “좋은 용병타자를 왜 잘 안 데려다 쓰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투수나 타자, 어느 쪽이 한국 리그에 적응하기가 수월하냐는 똑 부러지게 말하기 곤란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뛰는 몇몇 외국인 투수는 이름 한번 못 들어본 선수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이런 롯데조차도 선발 구인난에 허덕이는 대표적 팀 중 하나다. 그래서 구단 내부적으로는 ‘내년에는 롯데도 용병 선발 투수 두 명으로 시즌을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SK와 두산에서 실패했던 니코스키를 넥센이 대체용병으로 고른 것도 용병 투수 편향의 그림자 같은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