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따라 훈련장에 경기장에 3년 넘도록 집에선 잠만 자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축구장의 바짓바람… 동명초교 최태웅 선수 아버지 최윤상 씨의 ‘사커 대디 삶’

‘사커 대디’들이 박수를 치며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 태웅이 아버지 최윤상 씨(오른쪽)는 “예전엔 축구 문외한이었지만 이제는 축구 전문가가 다 됐다”며 활짝 웃었다. 김재명 기자
‘사커 대디’들이 박수를 치며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 태웅이 아버지 최윤상 씨(오른쪽)는 “예전엔 축구 문외한이었지만 이제는 축구 전문가가 다 됐다”며 활짝 웃었다. 김재명 기자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있는 동명초교 운동장. 훈련 시작 한 시간 전. 선수는 없었지만 아버지는 있었다. 이미 그는 준비를 마쳤다. 운동장에 모인 다른 아버지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정보를 교환했다. 오후 4시. 황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아들이 운동장에 나타났다. 훈련에 방해될까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아버지. 하지만 얼굴에 가득한 흐뭇한 미소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 박지성 아버지? 빙산의 일각이죠

주인공은 ‘사커 대디’(축구 선수인 아들을 적극 뒷바라지하는 아버지) 최윤상 씨(37). 유명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개인사업을 하는 최 씨는 일이 끝나면 바로 학교로 향한다. 아들 태웅이(11)를 보기 위해서다. 태웅이는 축구 명문으로 유명한 동명초교에서도 주목받는 유망주다.

사실 최 씨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군대에서 축구를 하고 나면 항상 발끝이 아팠죠. 발끝으로만 차는 줄 알았거든요. 그만큼 축구의 ‘축’자도 몰랐어요.”

이런 최 씨의 삶이 360도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2006년 1월. 축구부 감독의 권유로 당시 1학년이던 태웅이가 축구 선수가 되고부터다. 이때부터 축구부 운동장이 최 씨에게 ‘제2의 일터’가 됐다. 지방에서 열리는 경기가 있을 땐 잠시 일도 접었다. 길게는 보름 넘게 열리는 대회 기간에도 언제나 태웅이의 뒤에는 그가 있었다. 최 씨는 “태웅이가 운동을 하고부터 집에선 잠만 잔다. 요즘엔 집을 왜 샀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웃었다.

일주일에 업무상 서너 번 술자리를 가졌던 그는 ‘사커 대디’가 되고 나선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축구 선수 부모들과 축구 얘기 하는 게 일상이 됐다. 집 안은 족탕기, 안마의자 등으로 가득해 ‘피로 해소 기구 전시장’이 됐다. 한약은 물론이고 개구리, 녹용, 말뼈 등 몸에 좋다는 건 모두 태웅이의 몫. “누가 아들에게 ○○○를 먹였다고 소문나면 저절로 손이 가더라고요. 이런 게 아버지 마음인가 봐요.”

힘들진 않을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박지성 선수(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어렸을 때 직장까지 그만두고 아들 뒷바라지했다는 아버지 얘기 있죠? 그 정도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런데 중고교 선수 학부모 얘기 들어보면 지금 정도는 또 예행연습 수준이래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이가 행복하고, 미래가 있다면 만족합니다.”

○ 축구에선 ‘바짓바람’이 대세

축구 선수 아버지 가운데는 유독 최 씨 같은 ‘사커 대디’가 많다. 이날 축구부가 있는 인근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도 10여 명의 아버지가 나와 훈련을 지켜봤다. 유명 축구 스타가 등장할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게 헌신적인 ‘사커 대디’ 스토리. 보통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 대세인 다른 종목과 달리 축구에선 아버지들의 ‘바짓바람’이 대세인 셈이다.

‘사커 대디’가 이처럼 많은 이유가 뭘까.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종목 특성에서 이유를 찾았다. 그는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나 조기축구회 등에서 축구를 직접 접한 경험이 있다. 모두 자칭 전문가들이다 보니 아들 운동을 직접 챙기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축구 선수인 아들을 둔 최순호 강원 FC 감독은 국내 학원 축구의 특성에서 이유를 찾았다. 어릴 때 클럽에서 축구를 즐기는 유럽 등과 달리 국내에선 일찌감치 학교 선수 생활을 하며 축구에 ‘다걸기’하다 보니 아버지도 아들을 위해 ‘올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 몇몇 학교를 제외하곤 학교 축구부 환경이나 지도자 여건이 열악해 아버지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것도 한 이유로 꼽혔다.

박지성 같은 롤 모델이 있기 때문이란 설명도 있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김연아(피겨스케이팅) 어머니 스토리가 알려진 뒤 ‘피겨 맘’이 크게 늘어난 것처럼 박지성 아버지 얘기가 알려진 뒤 ‘사커 대디’가 부쩍 늘었다. 차두리(셀틱)-차범근, 기성용(셀틱)-기영옥 부자 등 스타 출신 ‘사커 대디’가 유명세를 타면서 다른 ‘사커 대디’에게 동기 부여가 되는 셈”이라고 전했다.

윤종석 동명초교 축구부 감독은 “지나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사커 대디’의 존재는 아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뒤에 있는 것만으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또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아이가 탈선하는 걸 막아줄 수도 있다는 것. 반면 과도한 관심이 부담으로 작용해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일부 ‘사커 대디’가 감독의 선수 기용에까지 참견하며 분란을 일으키는 것 등은 문제로 지적됐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축구 꿈나무들을 위한 박지성의 원포인트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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