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 덴마크(7월20일)~독일 베를린(23일)~체코 프라하(25일)~폴란드(26일) 덴마크를 지나 독일로 내려오자 도로의 상태가 급격하게 좋아졌다. 역시 '아우토반'은 소문대로였다. 차들이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적잖은 짐은 물론이고 초행길의 안전을 고려해 최대시속 120Km로 달릴 수밖에 없는 우리 일행은 제일 우측 차선에 고정 배치됐다. 앞에 트럭이 막아서 추월선으로 잠깐만 들어가도 뒤쪽에서 달려온 승용차들이 어느새 상향등을 켜고 길을 비켜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밤늦게 베를린 시내에 들어선 우리는 복잡한 도로와 표지판에 당황해야 했다. 이 순간 여행 시작부터 휴대해온 GPS 항법장치가 빛을 발했다. 러시아와 몽골은 첨단 GPS 도구에 정밀한 지도가 내장 돼 있지 않아 우리가 지나는 길을 기록하는 기능 이외에는 큰 도움을 얻지 못했다.
또한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거리 표지만으로도 길을 찾기 충분했다. 게다가 도시가 작아 무조건 도시의 '센터'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 모터사이클을 주차하면 걸어서 30분 거리에 모든 편의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은 거대한 도시였기에 길이 복잡해 초행자가 도로 표지판만으로 어디를 찾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 유럽 대도시에서 유용해진 GPS 항법장치
유럽의 상세지도를 포함한 GPS 항법장치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나 훌륭한 네비게이션의 역할을 해주었다. 미리 입력해둔 한인민박집 주솔 검색하여 장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니 쉽게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캠핑장은 덴마크부터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여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GPS항법 장치에 저장되어 있는 캠핑장 정보도 턱없이 부족하여 더 이상 숙박을 캠핑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베를린부터 다시 한인민박을 예약하였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인민박 사장님들에게 도움을 적잖이 받은 우리는 유럽에서도 짧은 시간 알차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정보를 한인민박에서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게다가 식사를 포함하여 일인당 20유로(약 3만원) 내외로 대도시에서는 저렴한 편이었다.
베를린에서는 BMW 공장을 견학하기로 계획했지만 막상 당도해 보니 공장이 이번 주 월요일부터 한 달간 여름휴가로 문을 닫았기 때문에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서비스센터에서 모터사이클의 바퀴를 교체하고 수리를 요하는 부분들을 모두 점검했다. 서비스 요금이 적잖게 나왔지만 다들 바이크가 한결 가벼워졌다고 좋아들 했다.
이미 자취가 사라지고 단지 바닥에 그 흔적만이 남은 베를린 장벽을 돌아보고 독일식 사우나를 경험한 이후 맥주 한 잔을 끝으로 조촐한 베를린 관광을 마감했다. 베를린에서 이제 여행을 마감할 2주 동안의 경로를 점검하기로 하였다. 이 경로는 기본적으로 막내가 세웠지만 거치는 나라와 그 수도만 해도 꽤 많아 일정을 자세히 맞춰보고 필요하다면 수정을 하기로 했다.
가보지 않은 길의 일정을 세우는 것은 쉽지 않지만 지도를 펴고 이런 저런 경우와 거리를 계산해보고 일단 그리스까지는 막내가 세워온 루트에 약간의 수정을 하기로 하고 막내는 가는 도시마다 한인민박집을 알아보고 예약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 드레스덴의 축제, 체코에서의 스카이다이빙 그리고 아우슈비츠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침 일찍 체코로 향했다. 도중에 민박집 사장님이 싸주신 김밥을 독일 남부 드레스덴에서 먹기로 계획했다. 마침 토요일 드레스덴에선 축제가 열렸다. 옛날 프러시아 시절 강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하던 것을 재현하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귀족 복장을 입고 성 주변에 모여 귀족 흉내를 내고 있었고, 강을 사이에 두고 양 쪽에서 서로 대포를 쏘고 있었다. 우연히 들른 곳에서 기대하지 않은 광경을 보는 것이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기분이 좋아진 우린 작은 도시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점심시간을 보내고 프라하로 떠났다.
체코 프라하에 도착하여 한인민박에 여장을 푼 후 민박집 사장님으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막내는 스카이다이빙에 환호했다. 스위스에 가면 해보려 했는데 이곳에서 훨씬 싼 가격에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날 오후에나 가능하고 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예약하면 다음날 10시경 가능여부를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일단 예약하고 어둑해지자 야경을 보러 시내로 나갔다.
세계 3대 야경중의 하나라는 민박집 사장님의 칭찬이지만 이미 세계3대 야경을 대여섯 개 보았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작은 시내에 모여 있는 성과 교회들, 의사당, 다리들에 한껏 조명을 비추어 야경을 관광 상품으로 만든 듯했다.
다음날 아침 처음으로 흩어져 각자 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러시아와 몽골에서의 부상으로 몸이 안 좋아 스카이다이빙을 함께 못하는 필자와 둘째는 시내에 남아 관광을 하고 막내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떠났다. 이내 둘째도 시내 촬영을 하러 돌아다니고 난 혼자 남아 중앙 광장의 카페에 앉아 맥주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스포츠중계도 보며 망중한을 즐겼다. 7시가 되어서 돌아온 막내의 얼굴은 흥분에 휩싸여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체코에서 워낙 늦은 시간에 출발하여 100여Km밖에 가지 못하고 다시 GPS항법장치에 의존하여 큰 도로에서 20Km 떨어져있는 캠핑장에 찾아갔다. 확실히 캠핑장의 숫자가 줄었고 찾기가 힘들어졌다. 그나마 예약 없이 묵을 수 있어 다행이지만 앞으로 캠핑에 의존하는 여행은 포기해야할 것 같다.
이른 아침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났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민박집에 예약을 해놓았고 890Km정도를 가야하기 때문이다. 로드를 맡은 필자는 간만의 질주를 선언했다. 일단 폴란드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까지 쉼 없이 내달렸다. 3시쯤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흩어졌다.
■ 우리의 산하를 닮은 동유럽의 풍광들
폴란드 감옥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후 나치가 유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데려다 학살한 곳으로 악명 높다. 20여개의 수용동은 각각 역사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고 학살의 증거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특히 산더미 같은 신발더미와 안경더미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이내 재출발 했지만 길이 구불구불하고 작은 마을들을 지나는 지방도로여서 속도가 나지 않았다. 150여Km 진행하여 슬로바키아에 들어가자 산이 많아 흡사 우리나라 국도와 같은 느낌이 들어 반가웠다.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의 레스토랑에 들려 식사를 했다.
6시가 넘어서야 오늘 처음 하는 식사였다. 동유럽 국가들의 음식은 우리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 체코도 그러했고 슬로바키아도 그랬다. 또한 관광지를 빼면 생각보다 값이 싸 맘 놓고 먹을 수 있었다.
요기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길을 확인하니 앞으로 350Km정도가 남은 듯했다. 내려갈수록 해는 짧아져 이제 9시면 어두워진다. 서둘러 다시 출발하여 해 저무는 슬로바키아의 산길들을 감상하면서 헝가리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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