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허재요? 아직 멀었어요.” 선수 시절 ‘농구 대통령’ ‘농구 천재’ 등으로 불리며 한국 농구 최고의 실력자로 이름을 날린 KCC 허재 감독(45). 그가 은퇴한 후 지도자로 옷을 갈아입은 지도 올해로 6년이 됐다. 코트를 떠난 이듬해인 2005년 KCC 사령탑을 맡아 지난 시즌까지 다섯 시즌을 보낸 그가 스스로 매기는 감독 성적표는 어떨까. 6일부터 선수들을 이끌고 중국 쿤밍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그를 8일 만나 물었다.》 “아직 한참 멀었어요. 10년은 더 해야 뭔가 보일 것 같은데….” 점수를 후하게 주기엔 민망한 자기평가라는 점을 감안해도 “아직 멀었다”는 대답은 뜻밖이다. 허 감독은 부임 첫해인 2005∼2006시즌 팀을 4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은 것을 시작으로 다섯 시즌 중 네 차례나 4강 이상의 성적을 냈다. 챔피언 결정전에도 두 번 진출했고 이 중 한 번은 우승컵을 안았다. 누가 봐도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성적이다.
KCC 구단은 2005년 당시 40세이던 허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팀 분위기를 젊게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적임자”라고 밝혔다. 강팀 이미지를 굳히면서 구단의 기대에 부응했고 지도자로서의 기반도 잘 닦은 허 감독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왜 그는 “아직 멀었다”고 할까. 허 감독의 얘기가 이어졌다. “승부의 세계에 2등은 필요 없어요. 그런 점에서 지난 5년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거죠.” 두 아들 허웅(17·용산고 2년)과 허훈(15·용산중 3년)이 처음 농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가 반대한 것도 냉혹한 스포츠 세계에서 정상에 오르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감독이 된 후 정규시즌 우승을 한 번도 못해본 것을 특히 아쉬워한다. “4개월이 넘는 리그를 치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어요. 주전 선수가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연패에 빠질 때도 있어요. 이런 위기 때 팀을 잘 추슬러 끌고 나가는 게 감독의 몫인데 아직 그런 대처 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현역 시절 워낙 이름을 날렸기에 선수들 플레이가 성에 차지 않으면 코트로 직접 뛰어들고 싶은 때도 가끔 있지 않을까. 하지만 허 감독은 “아이고 그런 생각 안 해요.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경기 내용에 불만이 있으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구상하기도 바쁜데 그런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감독이 된 뒤로는 항상 도전하는 자세”라며 “선수 시절에 잘나갔던 건 잊은 지 오래됐다”고 했다.
그는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먼저 선수들이 인정해 주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한다. “30년 동안 선수로 뛰어봐서 아는데 실력이 뛰어나고 좋은 성적을 내는 감독이라고 선수들이 다 인정해 주는 건 아니에요. 선수들의 마음까지 사야 합니다.” KCC는 이번 전지훈련에 하승진(25)이 참가하지 못했다. 하승진은 종아리 부상으로 국내에서 재활치료 중이다.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국가대표 최종 명단에서 빠졌지만 그동안 예비 엔트리에 이름이 올라 차출이 잦았던 혼혈 선수 전태풍(30)도 팀 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 시즌 개막이 어느새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허 감독은 조급해하는 기색이 없다. “100% 전력으로 싸우는 팀은 없어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이끌고 헤쳐 나가는 게 감독이 할 일이죠.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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