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아시아 선수 메이저리그 최다 승리 타이기록(123승)을 세운 '코리안 특급' 박찬호(37·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그가 승수를 하나씩 늘려갈 때마다 신기록 달성을 향한 힘찬 발걸음과 함께 한국으로 영구 귀국할 날도 점점 다가옴을 느낀다.
1965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생긴 이후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곧바로 진출한 18번째 선수로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했던 박찬호.
메이저리그에서 17시즌 째를 치르고 있는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를 은퇴할 때까지 잡았던 목표는 두 가지. 우승 반지를 껴보는 것과 일본의 노모 히데오가 가지고 있는 아시아선수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을 깨는 것이었다.
올 시즌 막강 전력을 자랑하는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두 가지 목표를 다 이루는 듯했다. 하지만 시즌 도중 부상에 이은 부진으로 방출 대기자 명단에 올랐고, 결국 메이저리그 최약체 팀으로 꼽히는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었다.
우승 꿈이 멀어진 박찬호는 이후 아시아인 메이저리그 최다승 달성 목표에만 전념했는데 드디어 타이기록을 세움으로써 이제 신기록 작성에 1승만 남겨놓은 상태.
박찬호는 지인에게 목표를 이루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몇 년 간 더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국내로 돌아오면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정에 따라 지명권은 연고지 구단이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공주고를 졸업한 박찬호에 대한 지명권은 충청 지역을 연고로 하는 한화 구단에 있다.
만약 박찬호가 올해 안에 신기록을 달성하고 내년 한화에 입단한다고 가정했을 때 재미난 사실은 20년 만에 몸값이 3000배 이상이 뛴 슈퍼스타가 돼 고향 팀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1991년 당시 공주고 3학년생이던 박찬호는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스카우트 대상이 아니었다. 151㎞까지 던지는 강속구 투수였지만, 제구력이 안 좋아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했기 때문.
그런데 박찬호가 3학년이 되자 한양대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연고지 선수를 대학 팀에 빼앗기기 싫었던 빙그레 측에서는 다시 그에게 접근했다.
당시 빙그레 측에서 박찬호에게 계약금으로 제시한 금액은 2000여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상의한 박찬호는 결국 대학 행을 택했고, 1993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그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LA 다저스에 스카우트 돼 한양대 2학년을 마치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게 됐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을 때 120만 달러(약 14억원)를 받았던 박찬호는 8년 후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할 때는 5년간 6500만 달러(약 753억원)에 계약했다.
2000여만 원에 불과했던 그의 몸값이 무려 3000배 이상 뛴 것.
내년 박찬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어떻게 될까. 한화로서는 20년 만에 울트라 슈퍼스타로 성장한 박찬호를 마침내 품에 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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