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주포 홍성흔의 부인 김정임 씨와 딸 화리 양이 4차전이 열린 3일 사직구장에서 그라운드를 배경으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나는 마음으로 야구장에 갔는데 표가 이중으로 발권돼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 아이는 보채고 경기는 이미 시작됐고…. 더군다나 포스트시즌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날 상황이다. 특히 선수가족이라면? 남편, 아빠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자리도 못 잡고.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홍성흔의 아내 김정임 씨는 스스럼없이 통로에 앉아 응원을 시작했다. ‘불편하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활짝 웃으며 “서 있으면 뒤에 앉은 관중들이 잘 안보이시잖아요”라며 딸 화리를 무릎에 앉힌다. 한 관중이 “자리는 하나인데 표 가진 사람이 둘입니다. 우짜란 말인교”라고 당황해하자 “저쪽 표찰을 목에 건 사람에게 말하면 새로 자리를 잡아줍니다”라고 친절히 설명한다. 마침 1회말 무사 만루찬스. 이대호가 타석에 서자 화리가 “다음이 아빠지?”라며 발돋움을 한다. 이대호가 삼진으로 물러서자 김 씨가 두 손을 마주 잡는다. 그러나 결과는 병살타. 순간 엄마는 고개를 푹 숙였고, 딸은 “엉엉엉”우는 소리를 내며 아쉬워한다.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열린 3일 사직구장. 김 씨가 화리의 손을 잡고 야구장에 들어서자 많은 관중이 얼굴을 알아보고 “홍성흔 파이팅”이라고 인사를 한다. 김 씨는 모델 출신이다.
빼어난 미모에 상냥한 인상으로 롯데팬에게 인기가 높다. 김 씨도 관중들을 마치 집을 찾은 손님 대하듯 깍듯이 대했다. 구단 직원이 서둘러 다른 자리를 마련했지만 먼저 기다리고 있던 다른 관중에게 양보하고 더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본인은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가까스로 새로 찾은 자리. 김 씨는 “어제 아이 아빠가 배트를 골라달라고 했어요. 좋은 꿈을 꿀 수도 있으니까 이 참에 하겠다고 한 뒤 정성을 다해 골랐는데 첫 타석에서 병살이에요, 어떻게 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부산 사람이다. 홍성흔이 2008년 FA로 두산을 떠나 롯데에 입단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며 맘고생을 함께 했다.
“예전에 남편은 자기가 안타를 못 치면 분해서 잠을 못 잤어요. 하지만 롯데에 온 뒤 자기가 아무리 잘 해도 팀이 지면 밤잠을 설쳐요. 베테랑으로 롯데가 강팀이 되는데 역할을 다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바뀌었죠.”
김 씨는 민어 등 보양식을 구하면 남편의 후배들을 집으로 불렀다. 홍성흔이 이대호와 타이틀 경쟁 중일 때는 오히려 이대호를 더 응원했다. 남편의 룸메이트 전준우는 지나칠 때마다 음료수라도 꼭 손에 들려 보냈다. “(전)준우 씨가 1차전에서 홈런 친 후 ‘누님 고맙습니다’라면서 알아 주더라고요. 남편과 저, 모두 팀을 더 많이 사랑하며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아요.” 말을 이어가는 동안 홍성흔의 타석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김 씨는 손을 마주잡고 그라운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직|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사직|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