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페]어린 선수 위로하는 외국 감독, 윽박지르는 한국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4일 03시 00분


3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막을 내린 10∼12세 대상의 다논 네이션스컵 월드 파이널 대회는 45개국 80개 팀이 출전해 각 나라의 축구 수준을 비교하기 좋았다. 특히 갓 운동을 시작하는 유소년 축구라 그 나라 축구 문화의 근간이 잘 드러났다.

이번 대회에 한국은 국내 명문 두 팀이 사상 처음 참가했다. 서울 대동초교와 의정부신곡초교. 전국 대회에서 자주 우승을 다투는 라이벌이다.

하지만 한국 팀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두 팀 모두 40개 팀 중 20위권에서 경기를 마쳐서가 아니다. 평소 자주 지적받던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부정적인 모습이 뿌리가 깊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주입식 학습에 익숙한 수동적인 선수들, 칭찬보다는 질책하는 엄한 지도자들 때문이다.

한 학교 지도자는 경기 내내 선수들을 ‘인마’ ‘바보야’ 등 부정적인 호칭으로 부르며 끊임없이 지시를 내렸다. 한 대회 관계자가 보다 못해 “너무 아이들을 다그치지 마라”며 주의를 줄 정도였다. 또 다른 학교 지도자는 경기에 지면 선수들을 불러놓고 눈물을 쏙 뺄 만큼 심하게 꾸짖었다. 상황이 이러니 한국 선수들은 지시를 놓칠까 봐 정작 경기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표정도 아이답지 않게 대회 내내 주눅 들어 경직된 모습이었다.

반면 외국 지도자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선수들이 혹시라도 상처받을까 봐 조심하는 게 역력했다. 경기에서 졌을 때나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선수가 있으면 위로하느라 분주했다. 경기에 졌을 때 눈물을 쏟고 분통을 터뜨리는 건 지도자가 아니라 오히려 선수들이었다. 승부 근성이 넘치는 외국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다시 장난기 많은 천진난만한 아이들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한 지도자는 “그 지적에 동감한다”면서도 “국내 학원 스포츠 분위기가 좀 그렇다. 당장 좋은 성적을 내지 않으면 학부모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친다. 아이들에게 자율을 주면 당장 경기력이 뚝 떨어지니까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어떻게 하면 한국 아이들도 행복한 축구 선수로 키워낼 수 있을까. 이미 유소년 축구판까지 물들인 뿌리 깊은 승리 지상주의, 성공 지상주의 풍토를 걷어내지 않으면 요원한 일이다.

―요하네스버그에서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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