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우승반지로 보답할거야”시차는 있었지만 둘은 같은 목표를 향해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시련을 경험했고, 불운으로 울었다. 좌절도 닥쳤으나 기어코 재기했다. 5일 잠실에서 최후의 대결, 준플레이오프 5차전 선발로 내정된 두산 김선우(33)와 롯데 송승준(30). 두 에이스의 인생 궤적은 마치 물감으로 찍어 반을 접었다 편 종이처럼 흡사하다. 그 궤도에서 또한 두 투수는 삶의 운명적 고비마다 교차하고 있다.
○도전
휘문고∼고려대를 거친 야구수재 김선우는 1997년 11월22일 보스턴과 계약했다. 1998년 싱글A 사라소타, 1999년 더블A 트렌턴, 2000년 트리플A 포터킷까지 탄탄대로였다. 1999∼2000년에는 2년 연속 퓨처스게임에 선발됐다. 그러다 마침내 2001년, 빅리그로 승격됐다. 2002년 빅리그 첫 승을 거뒀다.
경남고 출신 송승준은 1999년 2월3일 보스턴 유니폼을 입었다. 김선우를 영입한 레이 포이트빈트의 작품이었다. 1999년 루키리그부터 시작해 2000년∼2001년 싱글A-에서 싱글A+를 거쳐 2002년 더블A 트렌턴까지 김선우의 성장코스를 밟아갔다. 2001년엔 ‘보스턴 올해의 마이너리거’로 선정됐다.
○불운
둘에게 2002년 7월31일은 계단을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야구인생의 토대가 흔들린 날이었다. 보스턴은 타자 클리프 플로이드를 받는 조건으로 김선우와 송승준을 몬트리올에 넘겨준 것이다. 그래도 강팀 보스턴에서 약팀 몬트리올로 옮긴 것이니까 기회는 더 많아질 줄 알았다. 실제 김선우는 몬트리올에서 선발로 가동됐다. 그러나 2003시즌 대부분을 트리플A 에드먼턴에서 보냈다. 2004년 4승6패를 거뒀으나 프랭크 로빈슨 감독은 어쩐 일인지 김선우를 평가 절하했다. 2005년 결국 김선우는 1승2패만 남기고 웨이버를 통해 콜로라도로 옮겼다.
송승준은 끝내 빅리그의 문을 열지 못했다. 2003년 트리플A에서 13경기에 전부 선발 등판해 7승2패 방어율 3.79의 돋보이는 성적을 냈으나 로빈슨 감독은 외면했다. 빅리그가 눈앞에 보이던 시점에 토미 존 서저리(팔꿈치 인대 접합수술)를 받았다. 재활을 거쳐 2004년 다시 루키리그부터 시작해야 됐고, 그 해에 트리플A까지 초고속 승진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좌절
김선우의 콜로라도 시절은 잠깐 동안이나마 햇빛 쏟아지는 날이었다. 5승1패를 거뒀고, 쿠어스필드에서 배리 본즈의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다. 그러나 2006년 최악의 피칭을 거듭하다 마이너로 떨어졌고,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됐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 산하 프레스노에서 다시 도전했지만 빅리그 마운드에 서지 못했고, 가족을 위해 마음을 돌려 두산행을 택했다.
2004년 몬트리올에서 방출된 송승준도 절망 속에서 집념을 잃지 않았다. 토론토∼샌프란시스코∼캔자스시티 등 마이너 구단을 전전했지만 끝내 기회는 없었다. 해외파 지명제도의 혜택을 받아 2007년 고향팀 롯데로 돌아왔다.
○재기
어렸을 적 꿈을 위해 스스로 뿌리쳤던 지명구단의 품으로 돌아온 두 투수는 “우승으로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공유하고 있다. 김선우는 2009년부터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뒀다. 송승준은 2008년부터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에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냈다.
그리고 2010년 가을, 소속팀이 가장 1승에 절실한 순간에 두 투수는 또 한번 운명처럼 마주 오는 길목에서 재회했다. 미국에서는 함께 울었다. 이번 역시 적어도 같이 웃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