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공’ 손시헌 연장 끝내기 안타…큰 보람 느껴 가을곰 살찌우는 ‘소리없는 스파이’ 역할 최선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 두산(OB) 우동수(우즈∼김동주∼심정수) 트리오의 화력은 막강했다. 2000년에는 3명이 308타점을 합작할 만큼 가공할 파괴력이었다. 당시 이들이 많은 타점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잘 차려진 ‘밥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 빠르고 정교한 1번 정수근. 그리고 그 뒤에는 어떻게든 주자를 한 베이스 더 진출시켰던 장원진이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활약은 1995년과 2001년, 두산 우승의 밑거름이 됐다. 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리던 10일. 이제는 무대 뒤편에서 팀에 힘을 보태고 있는 두산 장원진(41) 전력분석원을 만났다.
○‘나는 타선을 잇는 가교, 누구나 홈런타자일 수는 없으니까…’
프로 15시즌 동안 1500경기에 출장해 통산타율 0.284. 준수한 성적이지만,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본인 스스로도 “뭐, 스타선수도 아니었고요”라고 말할 정도.
하지만 그는 ‘소리 없이 강한 남자’로 불렸다. 정확한 컨택능력으로 작전수행 능력도 뛰어났고, 매 시즌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0.370(27타수10안타),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0.292(24타수7안타)를 기록하는 등 큰 경기에서도 제 몫을 다했다.
“누구나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1번부터 9번까지 홈런타자일 수는 없지요. 저는 제가 잘 하는 역할. 그러니까 ‘가교’를 충실히 한 거에요. 갖다 맞히는 것은 자신 있었거든요.” 그 장기 때문에 그는 투수들에게 기피대상 1호였다. 투구수 늘리는 데는 최고였기 때문이다. 10구 이상의 승부도 종종 펼쳤다. “투수 뿐인 줄 아세요? 경기가 길어지니까, 심판 분들도….(웃음)” 장원진은 “(김)현수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한 것도 자신이 해결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큰 경기에서는 동료들을 신뢰하고, 뒤 타자들에게 기회를 이어주려고 할 때 잘 풀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나 같은 선수 분석하라면 쩔쩔 맬 듯’
장원진의 트레이드마크는 소위 ‘장원진 존’으로 떨어지는 ‘빗맞은 안타’였다. 3루수와 좌익수 사이. 그곳은 수비 만큼은 입신의 경지라는 유격수의 글러브도 닿지 못하는 ‘신성불가침’의 지역이었다. “한 시즌에 15개 정도는 그런 안타를 친 것 같다”는 설명. 1년이면 3∼4푼의 타율을 번 것이다. 특히 상대 야수들이 이런 종류의 안타를 잡기 어려웠던 이유는 배트가 나오는 각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공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를 것이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개구리가 어디로 뛸지. 두 번째는 여자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 지. 그리고 세 번째는 장원진의 타구가 어디로 갈 지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장원진은 “몸 앞에 공을 최대한 붙여놓고 때리려고 해서 몸쪽 공도 우측타구가 많았다. 손목 컨트롤도 좋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력분석원이 되고서 안 사실이지만, 그는 선배 전력분석원들에게 ‘난해한 존재’였다. 전력분석원에게 중요한 것은 데이터와 그 데이터의 원인분석. 하지만 그의 타구방향에서는 경향성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야수들에게 특별한 수비시프트 참고자료를 줄 수 없었다. “제가 봐도 저 같은 선수는 (분석하기가) 힘들어요. 하하.” 장원진은 페넌트레이스 막판부터 삼성 경기를 집중적으로 담당했다. 삼성에서는 신명철이 선수시절 장원진과 비슷하다. “신명철도 타구방향 분석하기가 어려워요. 그 선수도 몸쪽 공을 잘 밀어 치거든요. 하지만 저도 그랬으니까, 또 저만이 분석할 수 있는 부분도 있죠.”
○‘소리 없이 강한 남자니까, 소리 없이 보탬 돼야죠.’
제 아무리 좋은 자료를 갖다 줘도 선수들이 귀 기울지 않고, 눈을 닫아버리면 그만이다. 장원진은 “솔직히 나도 선수시절, 전력분석보다는 내 감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가 크다. 브리핑하기 전날이면, 밤을 하얗게 만들어 가면서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전력분석원의 일상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도 만약 선수시절에 전력분석원 말을 잘 들었으면 (통산타율) 3할을 채울 수 있었을 수도 있겠죠. 우리 팀에서는 브리핑 때 손시헌이 제일 열심히 들어요. 고맙죠. 잘 맞아떨어졌으면 좋겠고….” 그 손시헌은 PO 3차전에서 연장 11회 천금같은 끝내기안타를 쳐냈다.
“전력분석원은 일종의 스파이니까요. 여기서도 조용조용히 다녀야죠.” 그의 핸드폰 레터링 서비스 문구는 ‘소리 없이 강한 자.’ 세상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자신의 애칭처럼, 그는 조용히 두산의 가을을 살찌울 X파일을 준비한다.잠실|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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