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25년의 회한 때문인지,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붉게 충혈된 눈이 모든 것을 말할 뿐이었다. 삼성 안지만(27)의 아버지 안종환(53) 씨는 안지만이 세 살 때부터 외동아들을 홀로 키웠다. 가족이라고는 할머니까지 딱 세 식구 뿐.
아버지는 슈퍼맨이 돼야 했다. “낮에는 고물장사를, 밤에는 주점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아들의 뒤를 받쳤다. “한다고는 했는데…. 좋은 글러브 하나 못 사준 게 지금도 미안해요. 가죽이 다 떨어질 때까지 쓰곤 했는데….” 아버지의 눈가는 또 다시 젖어들었다.
아들이 학창시절부터 야구하는 날이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른 선수의 부모들은 응원단까지 만들어 가는데…. 돈 버는 아버지만 다가 아니었다. “일은 다른 분들께 맡겨두고 야구장에 나갔지요.” 아버지는 어머니 역할까지 했다.
마침내 장한 아들은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기사들은 대부분 ‘최경량 투수’에 관한 것이었다. 프로입단 당시 안지만의 체중은 60kg을 조금 넘길 뿐이었다. 아버지 역시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 “세 식구가 고기 10인분을 시키면 (안)지만이가 8인분을 먹었어요. 지만이 할머니랑 저는 1인분씩…. 그래도 먹는 모습만 보면 배가 불렀지요. 밥이 보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인다고 먹였는데…. 살이 안찌니 원. 저도 속상했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살’대신 ‘배짱’을 물려줬다. 불펜투수로서 안지만의 담력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스포츠동아 이효봉 해설위원은 “공의 위력이 떨어져도 좌우 컨트롤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아버지는 “나도 주변에서 강심장에 고집 세단 얘기를 종종 듣는다”며 웃었다.
11일 잠실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 7회 마운드에 올랐던 안지만은 8회 김동주의 타구를 맞고 교체됐다. TV로 지켜보던 아버지의 마음도 철렁. “그래도 전화를 못 하겠더라고요. 큰 경기 중이니까.” 최종전이 열리던 날 오전. 아버지는 어렵게 통화를 했다. “괜찮나?”, “왼쪽 손목인데요. 괜찮습니다. 마지막인데 기회 되면 던져야지요.” 제발 건강하게만 돌아오기를 바랄 뿐.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찜 갈비를 좋아했다”며 “찜 갈비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고 돌아온 아들. 아버지 역시 아들을 위한 최고의 가을 잔치 메뉴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25년간의 애틋한 부정으로 깊은 맛을 낸….대구|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