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투르 드 DMZ-서울]1구간 승부처 ‘을지전망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3일 03시 00분


해발 995m 지옥의 언덕… 20여명 낙오

전날 잔뜩 찌푸렸던 하늘은 눈이 부시게 파랬다. 2010 투르 드 DMZ∼서울 국제사이클대회가 첫 출발 총성을 울린 22일 오전 10시.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의 기온은 섭씨 19도였다. 레이스를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 60년 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비무장지대(DMZ) 일대는 아름답고 조용했다. 그 평화로움 속에서 선수들은 극한의 체력과 인내력을 요구하는 자연과 혈투를 벌였다. 이날 은륜의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낙오된 선수는 20명을 훌쩍 넘었다.

레이스 초반은 잔잔했다. 어쩌다 무리 맨 앞을 탐내 욕심을 부리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내 따라 잡혔다. 길이 좁아 독수리 대형(선두를 중심으로 메인 그룹이 뒤에 따라붙어 날개를 펼친 형태)은 애초 불가능했다.

30여 분이 지나면서 장경구(가평군청)와 토마츠 키엔데스(폴란드)가 선두로 치고 나갔지만 이내 붙잡혔다. 그러나 초반에 승부를 건 장경구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48km 지점부터 시작된 첫 산악 구간인 미시령(728m)을 1위로 통과했고 마지막까지 선두 경쟁을 벌일 수 있었다.

미시령의 내리막길은 아찔했다. 고지를 넘었다는 안도감에 스피드를 내려던 선수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한국 도로 사이클의 간판 박성백(국민체육진흥공단)과 국가대표 염정환(서울시청) 등 여러 선수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미시령은 예고편이었다. 약 48km를 더 지나 모습을 나타낸 을지전망대(995m)는 정윤태 서울시청 감독의 말대로 ‘지옥의 언덕’이었다. 선수들은 좀체 움직이지 않으려는 페달과 힘을 겨뤘다. 도저히 똑바로 올라갈 수 없어 지그재그로 조금씩 전진했다. 안장에서 내려 사이클을 끌고 가는 게 편할 정도였다.

고개를 넘은 선수들이 바람처럼 내리막 도로를 질주하는 사이 선두 그룹과 마지막 그룹의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가장 먼저 을지전망대를 넘은 토마츠 마르친스키(폴란드)가 4시간50분35초로 1위를 차지했고 장경구가 2초 차로 그 뒤를 이었다. 장경구와 초반 선두 다툼을 한 키엔데스는 을지전망대 오르막에서 힘이 빠져 29위에 그쳤다.

▼ 프로대륙팀 CCC폴샛 단체 1위… 팀원 마르친스키 개인 1위 ▼

마르친스키는 “미시령에서 내가 1위로 나서지 않은 것은 미리 세워 놓은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참가팀 중 유일한 프로 대륙팀 CCC폴샛은 개인 구간 1위인 마르친스키를 배출한 데 이어 구간 단체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이름값을 했다.

양구=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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