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인 시네마]<2>‘슈팅 라이크 베컴’을 보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7일 03시 00분


여자가 무슨 축구?… 편견 향해 꿈을 쏘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의 주인공인 제스의 방이다. 영국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좋아하고 플레이를 닮고 싶어 하는 그의 방에는 가수나 배우의 사진 대신 베컴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 제공 20세기 폭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의 주인공인 제스의 방이다. 영국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좋아하고 플레이를 닮고 싶어 하는 그의 방에는 가수나 배우의 사진 대신 베컴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 제공 20세기 폭스
지난달 26일 트리니다드토바고 포트오브스페인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결승전. 한국 선수들은 비장한 표정이었다.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굳어 있었다. 이때 회색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선수들의 표정은 금세 환해졌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LA 갤럭시)이 직접 한국과 일본 선수들을 격려했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선수들과 악수를 했다.

여자 축구선수와 베컴의 만남.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원제: Bend It Like Beckham)’을 봤던 사람들은 무릎을 탁 칠 만한 장면이었다.

‘슈팅 라이크 베컴’은 여자 축구선수를 다룬 흔치 않은 영화다. 베컴에 열광하는 영국의 두 소녀가 집안과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축구를 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결국 꿈의 무대인 미국 프로무대에 진출한다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베컴이 직접 출연하지는 않았다. 물론 주인공이 베컴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월드컵 결승전에 나섰던 여민지(함안 대산고)는 베컴과 직접 만났다. 영화 주인공과 여민지가 말하는 여자 축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한 번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 장면 #1

17세 이하 여자축구대표팀의 이정은(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26일 끝난 일본과의 17세 이하 월드컵 결승에 앞서 데이비드 베컴과 악수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베컴을 닮고 싶었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베컴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베컴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 태극소녀들은 우승까지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7세 이하 여자축구대표팀의 이정은(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26일 끝난 일본과의 17세 이하 월드컵 결승에 앞서 데이비드 베컴과 악수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베컴을 닮고 싶었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베컴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베컴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 태극소녀들은 우승까지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주인공 제스의 방에는 남자 친구의 사진 대신 베컴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다. 제스는 베컴의 휘어 감아 차는 프리킥을 동경한다.

하지만 여민지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베컴은 제 우상은 아니었어요. 선수들 중 베컴을 좋아하는 선수는 많아요. 그때 TV로 보셔서 알잖아요. 저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좋아해요. 방에 커다란 박지성 사진이 있고 학교 숙소 침대 맡에는 작은 메시 사진이 있어요. 메시의 플레이를 좋아해 드리블 연습을 많이 해요. 아쉽게도 영화에서처럼 저는 박지성 선수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어요.”

○ 장면 #2

짧은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제스가 못마땅했던 어머니는 언니의 결혼식에서 신을 구두를 사라고 제스에게 돈을 줬다. 구두를 사야만 했던 제스는 축구용품점에서 축구화를 사고 말았다. 축구화를 고르면서 환하게 웃는 제스.

“만약 비싼 구두와 축구화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저도 축구화를 골라요. 제가 축구화 모으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축구를 하는 주위 친구들도 다 그래요. 주인공이 축구화를 고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 장면 #3

부모님의 반대와 주위 사람들의 편견.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해.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서 시집을 잘 가는 것이 중요해. 데이트도 좀 하렴.” 영화에서 부모들이 주인공들의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하는 말이다.

“전 다행히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어요. 아주 행복한 경우죠. 영화처럼 제 주위에서도 부모님의 반대로 축구를 중도에 포기한 선수를 많이 보아왔어요. 지금도 제 미니홈피에는 부모님이 축구를 반대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댓글이 많이 달려요. 그럴 때마다 부모님을 잘 설득하고 꿈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줘요. 이제 우리들의 활약으로 그런 시선이 바뀔 때도 됐잖아요.”

○ 장면 #4

주인공 제스는 마지막에 변호사와 프로축구선수로서의 길 중 하나를 택하는 갈림길에 선다. 물론 미국 프로축구 선수로서의 미래를 택한다. 해피엔딩이다.

“저도 무조건 프로선수를 택하죠. 정말 가고 싶은 길이에요. 많은 선수의 꿈이 아닌가 싶어요. 안정된 직장보다는 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실과 영화는 다를 때가 많다. 하지만 한국 여자 축구선수들은 현실을 통해 이미 영화를 찍고 있다. 벌써 ‘19세’, ‘17세’ 등 몇 편을 개봉했다. 이제 ‘미국 진출기’, ‘월드컵 우승기’ 등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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