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상은 그들을 편견으로 바라봤다. 야구선수로는 성공하기 힘든 172cm의 단신. 그러나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통념을 뒤엎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팀 키스톤 콤비로 우뚝 선 유격수 손시헌(30·두산)과 2루수 정근우(28·SK) 얘기다.
손시헌은 선린정보고를 졸업하면서 프로팀 지명을 받지 못했다. 동의대를 졸업하면서도 지명 받지 못했다. ‘작은 키’ 때문이었다. 결국 2003년 신고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젠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남들은 흔히 ‘연습생 신화’라고 하지만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흘린 땀과 눈물의 양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정근우도 마찬가지다. 부산고 3학년 때인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로 프로팀 지명을 받지 못했다. 친구인 추신수는 미국무대로 가고, 이대호와 김태균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진출했다. 작은 거인 손시헌-정근우 호흡 착착고려대로 진학하면서 독기를 품었던 그는 결국 2005년 SK에 2차지명 1순위로 선택받았다. 당시 SK 감독은 지금 대표팀을 맡고 있는 조범현 감독. 계약금도 무려 1억4000만원이나 됐다.
정근우의 아버지 정병기 씨는 손시헌을 처음 만났을 때 포옹부터 했다고 한다. “네 덕분에 우리 근우가 1억이 넘는 계약금을 받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한 것.
2년 먼저 프로에 들어온 손시헌이 ‘야구는 키로 하는 게 아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아들도 희망을 품고 야구에 매달렸고, 정당한 대우를 받고 프로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둘은 지난해 나란히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면서 이미 자신의 포지션에서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사실상 이들이 키스톤 콤비로 활약할 첫 번째 국제무대. 2008년 3월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 때 함께 호흡을 맞추기는 했지만, 손시헌이 8월 본선 엔트리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대표팀에서 훈련 중인 손시헌은 “근우와 훈련을 해봤는데, 전혀 불편한 부분이 없다. 근우는 승부근성이 대단하고 후배지만 배울 점이 많다”며 공통점이 많은 후배를 치켜세웠다.
‘키스톤(keystone)’은 2루를 뜻한다. 4개의 베이스를 돌아야 득점을 할 수 있는 야구에서 2루는 말 그대로 ‘키가 되는 돌(베이스)’이다. 공격측과 수비측이 점유권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 ‘키스톤 콤비’는 2루를 중심으로 수비하는 2루수와 유격수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
역대 국가대표 키스톤 콤비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천재선수로 각광받은 인물들이었다. 타고난 실력의 소유자에게만 허락됐던 국가대표 유격수와 2루수.
그러나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역경을 딛고 눈물과 땀으로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 인간 승리의 주인공들이 맡는다. 역대 국가대표 최단신 키스톤 콤비일지 모르지만 실력과 투지, 금메달을 향한 의욕은 역대 최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