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광저우 아시아경기 수영 남자 자유형 100m 경기가 끝나자 아오티 아쿠아틱센터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금메달을 놓친 중국과 일본의 관중들은 침묵했다. 현장의 수영 관계자들은 한국 수영 영웅이 보여준 놀라운 결과에 충격 받은 모습이었다.
박태환(21·단국대)의 100m 금메달은 기대는 했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17일 오전에 열린 예선에서 전체 1위(49초85)로 결선에 올랐을 때도 금메달 획득까지 바라본 이는 많지 않았다. 박태환이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그랬듯이, 박태환보다 뒷조에서 뛴 루즈우(중국)와 아시아 기록 보유자인 일본의 후지이 다쿠로 등 단거리 강자들이 박태환의 레이스를 보고 힘 조절을 했기 때문. 박태환도 뜻밖의 예선 1위로 결선 4레인을 배정 받자 양 옆에서 오는 물살을 염려했다.
박태환의 결선 출발 반응 속도는 200m, 400m와 마찬가지로 역시 빨랐다. 그는 동료 박민규(고양시청), 루즈우와 함께 0.69초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내 처지기 시작했다. 3레인, 5레인 선수들이 앞서 나가며 퍼지는 물살도 그의 레이스를 방해했다. 박태환은 경기 후 “물살이 굉장히 셌고 파도도 심했다”고 말했다.
50m 턴을 할 때 그의 기록은 24초02로 5위였다. ‘힘들겠구나’ 싶던 순간 박태환은 폭발적인 스피드로 물살을 갈랐다. 그는 70m를 넘어서며 루즈우와 각축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후 쭉쭉 치고나가며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그는 48초70으로 종전 자신이 갖고 있던 한국 기록(48초94)을 경신했다.
자유형 100m는 박태환의 주 종목이 아니다. 그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100m에 출전하지 않는다. 박태환은 줄곧 1500m만 열심히 훈련해왔다고 말했지 100m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다.
100m와 200m, 400m는 훈련 방식이 많이 다르다. 50m와 100m를 함께 뛰는 경우는 많아도 400m가 주 종목인 선수가 100m까지 출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박태환의 100m 우승은 200m, 400m 훈련의 부산물이다. 박태환은 200m, 400m 훈련으로 뛰어난 막판 스퍼트 능력을 키웠다.
박태환은 로마 세계선수권 실패 이후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다. 훈련 성과가 좋았고 그는 4년 전 도하 아시아경기 은메달처럼 아시아권에서는 100m 메달 획득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것이 덜컥 금메달로 이어졌다.
박태환은 “작전 같은 건 없었다. 최선만 다하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좋은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 기쁘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훈련한 대로 헤엄치고 보니 우승했다는 것.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과연 ‘마린보이’ 박태환이다. 오!… 마침내 빛본 지구력 ■ 깜짝스타 탄생 정다래
광저우 아시아경기를 대비해 훈련이 한창이던 8월 말 태릉선수촌에서 정다래(19·전남수영연맹)를 만났다. 그는 “현재는 내 기량의 60% 정도이지만 아시아경기 때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거다. 평영 200m가 가장 자신 있고 목표는 금메달이다”라고 말했다. 아시아경기가 끝나면 뭐가 돼 있을 것 같으냐고 묻자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더니 “깜짝 스타”라고 했다.
아시아경기 개막 직전 한국 코치진에게 ‘박태환 말고 금메달을 기대하는 선수가 있는지’ 물었다.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자가 정다래를 후보로 지목해 봐도 두 개(은메달) 또는 세 개(동메달)의 손가락을 펼 뿐이었다.
17일 광저우 아오티 아쿠아틱센터에서 한국 여자 수영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평영 200m 결선에 출전한 정다래는 2분25초02로 우승을 차지했다.
정다래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출발 반응 속도는 0.82초로 8명 중 6위였다. 50m를 턴할 때 순위는 2위. 하지만 100m에 이르렀을 때 근소한 차로 선두에 섰다. 이후 그는 끝까지 앞에 있었다. 정다래의 장점인 지구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현재 대표팀까지 정다래를 지도한 안종택 코치는 “다래는 연습 때보다 경기에 나서면 성적이 안 좋았다. 부담 갖지 말고 원없이 해보라고 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다래는 우승을 확인하고는 물속에서부터 메달 시상대에 올라가는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 믹스트존에서는 기자들이 질문을 채 하기도 전에 ‘꺼이꺼이’ 울었다. 19세라는 어린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너무나도 순진무구한 모습이었다. 그는 “부모님 말도 잘 안 듣고 운동도 게을리 했는데 그때마다 잡아줘서, 감사하고요. 사랑해요. 엄마, 아빠”라며 넘치는 감격을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또 가장 생각나는 사람을 묻자 “코치님, 부모님, 동현이”라고 말했다. 그가 실명을 거론한 주인공은 복싱 유망주 성동현(서울체고)이다. 정다래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면 ‘남자친구는 아니고 다래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여자 수영 스타 탄생이다. 2년 전부터 일부 수영 팬들 사이에서 ‘4차원 얼짱 수영 소녀’로 통하던 정다래는 아시아경기를 위해 광저우에 입국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며 한층 유명해졌다. 예상 못한 금메달 그리고 주체하지 못한 눈물과 귀여운 외모를 빛내는 엉뚱함까지. 정다래는 석 달 전 본인의 예상대로 깜짝 스타가 됐다. 그의 금메달을 예상한 사람은 정다래 본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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