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의 운동 강도는 마라톤, 트라이애슬론을 능가한다. 한국 조정의 미래 이상민(오른쪽), 신영은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는 지옥훈련을 견뎌내고 19일 드디어 싱글스컬 남녀 결선에 출전해 메달 사냥에 나선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중국 광저우 국제조정센터에서 만난 한국 조정의 기대주 이상민(18·서울체고)과 신영은(23·수원시체육회). 그들에게 조정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음…. 엄청 힘든 게 재밌어요.”
꽤 오랜 시간 고민하더니 내놓은 답이다. 이 사람들, 좀 이상하다.
○ 뱃사공에 낚이다
이상민은 겁 많은 아이였다. 밤이면 귀신 나올까 봐 떨었다. 길 가다가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태권도장에 갔다. 심약한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자 어머니가 보낸 것. 하지만 도장 문을 열자마자 이내 도망쳐 나왔다. 도복은 입어보지도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 아이의 키는 173cm였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상민은 갑자기 운동이 하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다. 정신과 육체가 통했을까. 그의 키는 1년 만에 185cm까지 자랐다. 중학교 내내 태권도를 했지만 원했던 체고 태권도 특기자 입학은 좌절됐다. 서울체고 태권도부 입학 테스트 날, 구경하고 있던 소년에게 조정부 감독이 다가왔다.
“너 조정 해볼래?” “싫은데요.” “너 태권도 왜 하는데?” “국가대표 되려고요.” “그럼 국가대표 만들어 줄게. 조정 해.”
신영은은 ‘조금 노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커서 운동을 해보란 권유를 많이 받았다. 5학년 때 핸드볼부에 들어갔지만 얼차려를 많이 받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운동부에 들어오라는 코치들의 유혹이 많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운동부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코치들을 피해 도망 다녔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에야 ‘공부 안 하고 이럴 바에야 운동 한 번 해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조정선수였던 작은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정부가 있는 화천정보산업고에 입학했다.
○ 다시 태어나도 우린 조정 선수
조정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두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달리기 하다가 달리는 트럭에 뛰어들고 싶었고, 배 타다가 차라리 물에 빠져서 못 나오는 게 낫겠다 싶은 적도 많았죠.”(신영은)
“조정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잘못 걸렸다 싶었어요. 인기 종목을 이 정도 죽어라 했으면 정말 뭐라도 되지 않았을까요.”(이상민)
실제로 조정의 운동 강도는 엄청나다. 마라톤이나 트라이애슬론 이상이고 모든 종목을 통틀어 크로스컨트리 다음으로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목, 허리, 어깨, 무릎 등 신체의 모든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의 관심은 매우 적다. 신영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한국 선수 최초로 싱글스컬(한 선수가 두 개의 노를 젓는 종목으로 거리는 2000m) 준준결승에 진출했다. 당시 국내 방송사 어디도 중계를 해주지 않았는데 이를 일부 누리꾼이 비난하면서 화제가 됐다.
“당시 베이징 올림픽 인터넷 응원방에 국민들이 올려주신 응원 메시지를 하나하나 다 읽어봤어요. 나란 사람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는구나 싶어서 감동했죠. 물론 그때뿐이긴 했지만….”
그들에게는 무관심과 빈약한 지원은 너무나 익숙한 말이다. 현재 한국 조정대표팀은 선수를 제외하면 감독 1명, 코치 1명이 전부다. 장현철 감독과 임명웅 코치가 마사지사, 운전사, 영양사 등 1인 다역을 하고 있다. 우리가 잘하면 지원을 해주겠지 하다가도 지원만 좀 더 해주면 훨씬 더 잘할 텐데라는 생각이 늘 교차한다.
이상민과 신영은은 19일 싱글스컬 남녀 결선에 각각 출전한다. 한국팀으로서는 가장 기대하는 금메달 후보다. 둘은 “죽기 살기로 한번 해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훈련 때도 이러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그들이기에 누구의 각오보다도 진실하다.
“정말 힘들지만 다시 태어나도 조정선수 할 것 같아요. 자식한테도 시키고 싶어요. 사람을 ‘된 사람’으로 만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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