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귀국한 한국 유도의 간판 왕기춘(22·용인대·사진). 지난해 폭행 사건 뒤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던 그는 더욱 예민해져 있었다. 훈련에만 집중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없앴다. 어렵사리 밤늦게 그와 통화가 됐다. 그는 5000원짜리 공중전화 카드를 사용했다.
궁금했다. 15일 중국 광저우 화궁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남자 73kg급 결승에서 왜 아키모토 히로유키(일본)의 발목을 공격하지 않았는지. 준결승에서 왼쪽 발목을 다친 아키모토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경기장에 들어섰다. 왕기춘은 낙승이 예상됐지만 연장 종료 23초를 남기고 유효를 내주며 패배했다. 경기 내내 그는 아키모토의 발목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에 팬들은 왕기춘의 페어플레이를 칭찬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왕기춘이 아키모토의 하체를 공격하지 않고 주특기인 업어치기를 고집한 것은 처음부터 판정승을 의식한 작전이었다’고 폄하했다.
이에 대해 왕기춘은 “기사들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서도 “기자회견에서 두 마디밖에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기사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경기 뒤에 인사를 제대로 안 한 것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나 경황이 없었던 탓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 다리로만 서 있는 상대를 메치지 못했다. 다리 공격을 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를 메쳤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원래 하체 공격이 약하다는 지적에는 “업어치기만 주특기가 아니다. 나는 다리뿐 아니라 하체 공격도 잘한다. 왜 그런 지적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왜 결승전에서 다리 공격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경기 전 다리 공격에 대해 준비를 많이 했다. 하지만 다리를 절고 들어오는 상대를 봤다. 왜 내가 다리 공격을 하지 않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말을 흐렸다. 유도계의 비난을 의식했냐고 묻자 “그런 플레이를 했다면 분명 안 좋은 시선이 있었을 것이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자신도 모르게 발현된 양심일까. 한숨을 푹 쉰 뒤 그는 다시 한 번 “정말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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