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광저우 아시아경기 태권도 경기가 열린 광둥체육관. 주최 측이 건물 밖 그늘에 플라스틱 테이블 여러 개를 갖다 둔 휴식 공간에 각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한국인들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들은 외국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인 태권도 사범들로, 세계 태권도 실력 평준화의 주역들이다. 평준화는 곧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려워짐을 뜻하지만 한편으론 이들 덕분에 태권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태권도 인구 30만… 축구와 國技 경쟁
이들은 국제대회에서 메달 한 번 따지 못했던 나라에 꿈을 심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네팔 태권도 대표팀을 이끌고 4년 전 카타르 도하 대회에 이어 아시아경기에 두 번째로 참가한 권혁중 감독(51)이 대표적인 경우다.
권 감독은 네팔에선 국가 영웅으로 대우받는다. 태권도 대표팀을 맡은 지 불과 2년 만인 2006년 도하 대회에서 9명을 출전시켜 3명이 동메달을 땄다. 네팔은 1951년 제1회 뉴델리 대회 때부터 아시아경기에 출전해 왔지만 메달을 따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네팔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태권도 선수 한 명을 출전시켜 역사상 처음 올림픽 무대도 밟았다.
권 감독은 “이후 네팔 정부가 태권도 사범 110명을 선정해 월 8만5000원의 지원금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태권도는 현재 국기(國技) 후보로 축구와 경합 중인데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권 감독의 말이다.
○ 전자호구 착용법 경기 직전에야 배워
하지만 4년 전 권 감독이 이룬 ‘도하의 기적’이 이번 광저우에선 재현될 것 같지 않다. 이번 대회 남녀 6명씩 12명이 출전했는데 이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된 전자호구 시스템. “네팔에 태권도 인구가 30만 명인데 제대로 된 도장 하나 없어요. 풀밭이 도장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하나에 수십만 원 하는 전자호구 구입은 생각도 못합니다. 선수들은 여기 와서 전자호구를 처음 봤어요. 착용 방법도 몰라 따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권 감독의 이 말에 옆에 있던 방글라데시 이주상 감독(41), 캄보디아 최용석 감독(43)은 “우리 같은 열악한 처지에서 전자호구 시스템은 언감생심”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광둥체육관 옆 휴식 공간이 다시 한국말로 왁자지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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