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수영→승마→사격·육상, 근대 5종 경기
막내 정훤호 진통제 투혼 태극전사 4人 ‘정상 환호’
광저우 아시아경기 근대5종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이춘헌 김인홍 정훤호 김기현
(왼쪽부터)이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광저우=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날카로운 눈, 강한 팔과 다리, 뜨거운 심장 그리고 차가운 머리.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강의 전사에 도달하기 위해 5개 종목을 함께 겨뤘다.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근대5종이다. 근대5종은 펜싱, 수영, 승마, 육상, 사격을 모두 하는 종목이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경쟁에 뒤처진다. 24일 광저우 황춘 스포츠 베이스 및 아오티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광저우 아시아경기 근대5종 남자 개인 및 단체전. 대표팀 맏형 이춘헌(30·한국토지주택공사)과 막내 정훤호(22·서원대)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 8시 30분, 펜싱 (날카로운 눈)
첫 관문은 펜싱이었다. 이춘헌은 2003년 이후 줄곧 대표팀을 이끌어온 맏형. 4월 1차 대표 선발전에서 1월 수술한 왼쪽 무릎이 회복되지 않아 탈락했다. 하지만 막바지에 대표에 합류할 수 있었다.
선수들은 펜싱에서 16명의 상대와 2번씩 겨룬다. 1분 내에 1점을 먼저 내는 사람이 승자다. 기회를 포착하는 매의 눈이 필요하다. 이춘헌은 24승 8패로 1위. 최강 실력을 과시했다.
정훤호는 찌르기를 시도하다 왼쪽 발목이 꺾였다. 마스크 안으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아파서 그리고 형들에게 미안해서. 그는 펜싱 경기를 마치고 30분 간격으로 진통제를 맞아야만 했다.
■ 11시 30분, 수영 (강한 팔 다리)
수영은 자유형 200m로 승부를 가린다. 이춘헌은 올해 자신의 기록을 2초가량 단축했다.
30대에 접어든 선수에게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정훤호의 상태는 심각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수영장까지 업혀서 가야 했다. 물에 뛰어드니 차라리 나았다.
하지만 발차기는 평소 같지 않았고 어깨는 아팠다. ■ 2시 30분, 승마 (뜨거운 심장)
근대5종 승마에서 말은 경기 시작 20분 전에 선수와 만난다.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말과의 교감을 이루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이춘헌이 수술 후 회복하기까지 반년 동안 그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내 몸이 아파 아내를 돌보지 못한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40일 전 딸이 태어났다. 그의 심장은 타올랐다. 그의 마음이 말에게도 전해진 걸까. 그는 말과의 완벽한 교감으로 1200점 만점을 받았다.
정훤호의 말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나마 다리에 힘을 안 들이고 벌일 수 있는 경기가 승마이건만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2분여 동안 말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정훤호는 승마가 끝나고 또 한 번 눈물을 쏟았다.
■ 4시 50분, 사격+육상 (차가운 머리)
차가워야 했다. 근대5종 마지막 경기는 20m 달리기 후 ‘사격 5발+1000m 달리기’를 3회 반복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5발을 과녁에 명중시키려면 냉정하게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이춘헌은 그러지 못했다. 종합 순위 1위로서 가장 먼저 출발하는 이점을 안았지만 첫 사격부터 흔들렸다. 금메달을 차지한 중국의 차오중룽에게 7초 이내로만 뒤졌으면 1위였다. 하지만 20초 넘게 뒤지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인홍(28·한국한국토지주택공사)은 동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단체전 금메달은 한국(2만2232점, 2위 중국 2만2028점)의 것이었다. 금메달은 정훤호의 부상 투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는 “그냥 죽자”는 생각으로 달렸다. 몸은 부서질 것 같았다. 그는 금메달을 확인한 후 또 엉엉 울었다. 부상으로 은퇴까지 생각했지만 재기에 성공한 이춘헌, 서 있기도 힘든 상황에서 죽을 각오로 내달린 정훤호. 그들의 목에 걸린 건 금메달이었고 그들은 최강의 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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