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애로 뚫은 ‘금빛 과녁’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6일 03시 00분


남편 총 쏘고 아내는 탄알 장전, 이지석, 공기소총 복사 금메달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 사격 10m 공기소총 복사(SH2등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지석(오른쪽)과 부인 박경순 씨. 사진 제공 대한장애인체육회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 사격 10m 공기소총 복사(SH2등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지석(오른쪽)과 부인 박경순 씨. 사진 제공 대한장애인체육회
아버지는 아들을 끔찍이 아꼈다. 2001년 아들이 교통사고로 휠체어에 앉은 뒤에는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버지는 올해 9월 중순 “외출하고 싶다”며 아들의 집을 찾았다. 든든한 아들과 예쁜 며느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만난 아버지는 이튿날 조용히 숨을 거뒀다. 76세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막내아들의 가족을 만나는 것이었다.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2관왕 이지석(36)이 광저우에서도 금빛 총성을 울렸다. 이지석은 15일 중국 광저우 아오티사격장에서 열린 10m 공기소총 복사(SH2등급)에서 합계 705.4점을 쏴 중국의 룽루이훙을 0.2점 차로 제쳤다.

베이징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이지석의 뒤에는 아내 박경순 씨가 경기 보조 요원으로 서 있었다. 아내는 양손에 제대로 힘을 줄 수 없는 남편이 한 발 한 발 총을 쏠 때마다 탄알을 장전했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와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박 씨는 “교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달라고 기원했다”고 전했다.

9발까지 모두 10점을 훌쩍 넘겼던 이지석은 마지막 10발째 9.9점을 쐈다. 1번 사선의 룽루이훙은 10.8점을 기록했다. 이지석은 “마지막 점수를 확인한 뒤 메달도 못 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아내도 덜컥했다. 사선에서는 점수 합계를 확인할 수 없어 관중석 쪽으로 나와 전광판을 봤다. 그리고 남편에게 다가가 “축하해요”라는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의 눈에는 동시에 눈물이 맺혔다.

과녁을 겨냥하는 이지석의 무릎 위에는 가족사진이 있었다. 아내, 두 돌이 지난 아들 예준과 찍은 사진이다. 이지석은 “경기를 할 때 항상 이 사진과 함께한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부부는 입을 모아 말했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하늘에 있는 아버지를 존경했던 아들은 이날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

광저우=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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