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체로 농구 선수들은 심판에게서 파울을 지적받으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선수에게 했을 때만큼은 다르다. 심판에게 달려가 자신이 잘못했다는 표시로 손을 번쩍 든다. 그리고 말한다. “제가 파울했어요.” ‘핵-어-샥(Hack-a-shaq).’ 미국프로농구(NBA)의 ‘공룡 센터’ 샤킬 오닐(38·보스턴·216cm)을 막는 방법은 파울이 최고다. 2000년대 초부터 유행한 이 전술은 오닐의 약점인 형편없는 자유투 성공률(통산 52.7%)을 노렸다.
#2. 한국 농구의 대들보인 센터 하승진(25·KCC·221cm).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압도적인 높이와 힘을 갖췄지만 4쿼터만 가면 위축된다. 그가 찬스를 잡을 때마다 상대 팀은 가차 없이 파울로 끊는다. 그의 통산 자유투 성공률은 48.2%. 골밑슛이 포함되긴 했지만 야투 성공률(64.3%)보다 한참 낮다. 덕분에 하승진과 샤킬 오닐의 이름을 합성한 그의 별명 ‘하킬’을 빗대 ‘핵-어-하킬’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최근 끝난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도 유재학 대표팀 감독은 “승진이 자유투 성공률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도 결승전 등에서 활용 폭이 넓었을 것” 이라며 아쉬워했다.》
골대로부터 거리는 고작 4.225m. 방해하는 선수도 없고, 숨 고를 시간도 충분하다. 그래서 ‘자유투(自由投)’, 영어로는 ‘Free throw’로 불린다. 하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게 또 자유투다. 과거 슛 도사로 이름을 날린 이충희 전 오리온스 감독은 “자유투는 넣어야 본전으로 인식된다. 그렇기에 더 부담되는 게 자유투”라며 “자유투를 지배하면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도 자유투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10개 구단 가운데 하위권에 속한 4팀 모두 자유투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인삼공사와 오리온스, 모비스는 팀의 구심점인 주축 용병들의 자유투 성공률이 뚝 떨어진다. 특히 올 시즌 최고 용병으로 기대를 모았던 오리온스 글렌 맥거윈의 낮은 자유투 성공률(45.9%)은 팀 전체의 불안 요소가 됐다. 김남기 오리온스 감독은 “정말 답답하다. 에이스의 자유투가 불안하다 보니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불안감이 전염되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오리온스는 현재 팀 평균 자유투 성공 횟수 꼴찌다. KCC는 주축 용병의 자유투가 괜찮지만 용병급 활약이 필요한 하승진의 자유투 성공률이 저조해 허재 감독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 승부처 희비? 자유투에 물어봐
“해피 바이러스죠. 자유투가 초반부터 잘 들어가면 다른 것도 잘돼요.”
모비스 가드 양동근(29)은 자유투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투가 잘 들어가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슛 감각이 좋아져 경기가 잘 풀린다는 얘기다. 반대로 자유투가 안 들어가면 경기가 꼬일 가능성이 높다. 강동희 동부 감독은 “자유투를 못 넣으면 그걸 만회하려고 무리하다 다른 실수까지 하게 된다”고 했다.
자유투는 특히 승부처에서 중요하다. 4쿼터 접전 상황에서 감독들은 가장 먼저 상대 팀의 자유투 성공률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파울 작전 등 전술을 운용할 때 어떤 선수에게, 어느 시점부터 파울을 할지 자유투를 중심으로 손익계산서가 그려진다. 조성원 SBS-ESPN 해설위원은 “올 시즌 전자랜드가 특히 4쿼터에 뒷심을 발휘하며 잘나가는 이유는 노련하고 슛이 좋은 문태종(35)이란 걸출한 슈터가 합류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 방법은 달라도 목표는 “자유투를 잡아라”
이렇다 보니 감독들은 자유투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오리온스는 자유투 훈련 때 혼자 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항상 실전처럼 동료들이 모여 슛 던지는 선수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준다. 벌칙도 있다. 강을준 LG 감독은 “일정한 자유투 개수를 정한 뒤 성공하지 못할 경우 체력 훈련을 시킨다”고 했다. 강동희 동부 감독은 “자유투만큼은 훈련 때도 쏘는 자세와 성공률 등을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말했다. NBA에선 오닐 등 몇몇 선수에게 자유투 전담 코치가 있었다. KCC도 하승진에게 전담 코치를 붙여주는 방법까지 생각했다. 채찍보다 당근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전창진 KT 감독은 “자유투를 못 넣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하지만 한번 주눅 들면 안 들어가는 게 자유투이기에 항상 억지로라도 웃어주는 편”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보통 자유투를 쏘기 직전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 손에 침을 묻히기도 하고, 공을 몇 번 튀기기도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선수도 있다. 모두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 자신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프로농구 통산 자유투 성공 1위 서장훈(전자랜드·2023개)은 이렇게 말했다. “코트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비워야 할 때가 자유투를 쏠 때죠. 무심(無心)해야 어깨에 힘을 뺄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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