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창원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제9구단 창단의향서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제출한 가운데, KBO는 다른 기업들과 물밑 접촉을 통해 이번 기회에 10구단 체제를 출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개팀이 동시에 신생팀으로 창단하는 것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확보. 프로야구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창단 형식을 통해 프로야구에 새롭게 진입한 구단은 1985년 빙그레(현 한화), 1990년 쌍방울, 2000년 SK, 2008년 히어로즈 등 4개 구단이다. 그렇다면 당시는 어떻게 전력을 수급했을까. 그리고 기존 구단에서는 어떤 지원을 했을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새로운 해법을 고민해야할 듯하다. 빙그레 공개모집에도 선수난에 허덕 트레이드 선수는 전력에 도움 안돼
○1985년 빙그레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대전과 충청권을 연고로 출발한 OB는 1984시즌을 끝으로 프랜차이즈를 서울로 옮겼다. 충청권에 창단우선권을 쥔 기업은 1983년에 이미 창단신청서를 제출한 한국화약그룹이었다. 팀명을 빙그레 이글스로 하고 1986년부터 1군 리그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나 창단 이후 선수단 구성은 가장 큰 난제였다.
1985년 1월 24일 이사회에서 ‘신생구단의 전력보강에 대한 트레이드에 적극 협조한다’고 결의했지만 대부분의 구단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빙그레는 선수공개모집을 통해 선수단을 구성했지만 전력이 될 만한 선수는 거의 없었다.
4월 20일에서야 롯데가 김재열 이석규 이광길 등 3명을 보내줬고, 삼성이 7월 26일 박찬에 이어 8월 19일 김한근 송상진을 보냈다. 이어 시즌 종료 후 OB가 김우열과 김일중을 트레이드했다.
1986년 청보에서 방출당한 장명부를 영입하기도 했지만, 시즌을 코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선수난에 허덕였다. 2월 10일에 삼성이 성낙수 임순태 김성갑 황병일 등 4명, 롯데가 천창호를 지원했고, 이후 해태가 유승안 김종윤을 트레이드했다.
빙그레는 1985년과 86년 이상군 한희민 등 국가대표 출신 투수와 이강돈 강정길 김상국 전대영 등을 신인선수로 영입했지만 첫해 무려 29차례에 걸쳐 1점차 패배를 당하는 등 전력이 크게 뒤처졌다. 기존 팀에서 보내준 선수 중 팀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는 극히 일부였다. 1986시즌 종료 후 무려 19명을 무더기로 방출했을 정도였다.
쌍방울 창단땐 선수지원 약속 실행
보호선수 외 2명씩 지명트레이드
○1990년 쌍방울
빙그레 창단 당시 기존 팀들은 겉으로는 선수지원을 약속했지만 텃세를 부렸다. 그러면서 차후 신생팀을 위해서는 제도적인 선수지원책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는 자성론이 일었다. 결국 1990년 쌍방울 창단 때는 기존팀들이 명문화된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1989년 7월, 임시구단주총회에서 구단창설권을 부여받은 쌍방울은 기존 7개 구단에서 22명의 보호선수를 제외한 보류선수 중 구단별 2명씩을 지명트레이드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영입한 선수가 김평호(해태), 손문곤 조용호(이상 빙그레), 유동효(태평양), 진동한(삼성), 한오종 이승희(이상 OB), 이재홍(MBC), 이창원(롯데) 등이었다.
또 쌍방울은 1990년과 1991년, 신인 2차지명 10명의 우선 지명권도 받았다. 쌍방울은 1990년 2군리그에 참가한 뒤 이듬해 1군리그에 합류했다.
SK 2년 연속 3명 우선지명권 확보 채병용 박재상 등 현재의 주전 키워
○2000년 SK와 2008년 히어로즈
SK와 히어로즈는 각각 해체된 쌍방울과 현대 선수들을 그대로 안고 갔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그야말로 ‘무(無)’에서 출발한 빙그레와 쌍방울과는 다르다.
그러나 2000년 SK 창단 때는 쌍방울 선수 지원 외에도 많은 혜택이 돌아갔다. 전력평준화 차원에서 2001년부터 2년간 신인 2차 우선지명권(3명)을 부여했다. 또 SK의 요구를 반영해 나머지 7개 구단에서 23명의 보호선수 외에 1명씩 트레이드해 줄 것과, 창단 시즌에 한해 3명의 외국인 선수를 등록해 그 가운데 2명을 출전시키는 방안도 허락했다.
특히 2년 연속 3명의 우선지명권을 통해 김강민 채병용 박재상 윤길현 등 미래 젊은 유망주를 대거 확보한 것은 SK 입장에선 결국 큰 힘이 됐다.
하지만 히어로즈는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 앞서 SK의 전례를 들어 2차 우선권을 단 한 장이라도 받게 해 달라고 하다 기존 구단들의 반대로 뜻을 접는 등 태생적 한계 탓에 별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