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8도 칼바람… 22m 수직빙벽… 거미인간 119명 극한을 오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0일 03시 00분


청송서 亞첫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영하 18도의 산골. 전체 높이 63m의 빙벽. 칼바람은 피부 주름마다 박혀 온몸을 얼릴 듯했다. 얼음골이란 지명은 괜한 게 아니었다. 경북 청송군 얼음골에서는 7일부터 9일까지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열렸다.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은 국제산악연맹이 주관하는 최고 권위의 대회다. 1년에 서너 차례 열리는데 아시아에서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회는 난이도와 속도 경기로 나뉘어 열렸다. 난이도 경기는 빙벽과 드라이툴링(합판 위에 돌을 붙여 만든 인공 구조물)으로 이뤄진 수직 고도 22m, 등반 길이 30m의 벽을 제한 시간 내에 얼마나 높이 오르는지를 가렸다. 속도 경기는 높이 12m의 직각 빙벽을 가장 빨리 오르는 사람이 승자였다. 25개국 119명의 선수들은 칼바람을 뚫고 하늘과 가까워지려 애썼다. 얼음골 바람은 물을 얼려 빙벽을 만들고 나무와 풀마저 얼어붙게 했다. 하지만 단 하나, 자신에 맞선 인간만은 얼리지 못했다.

○ 무쇠팔 무쇠다리 그리고 무쇠 입


난이도 경기는 직각의 빙벽과 110∼130도로 꺾인 오버행 구간, 원통에 얼음을 붙인 인공 장애물 등이 이어진다. 선수들은 1.5∼2m 간격으로 매달린 카라비너에 로프를 걸고 벽에 붙어있는 돌을 잡으며 오른다.

닿을 듯 말 듯한 돌을 손으로 잡거나 아이스바일(손도끼)로 찍기 위해 선수들은 기예에 가까운 동작을 선보였다. 아이스바일 두 개를 돌 하나에 찍고 팔 위로 다리를 올린다. 팔은 다리를 지탱하고 다리는 팔을 발판으로 더 높은 벽을 찍는다. 도무지 전진이 힘들 것 같은 벽을 오르기 위해 선수들의 몸은 꼬이고 또 꼬였다. 유연한 허리는 아이스클라이밍의 필수. 선수들은 꺾어진 벽보다 더 크게 온몸을 부챗살처럼 휘었다가 곧게 펴기를 반복했다.

선수들에게는 강한 치아도 필요했다. 손으로 돌을 잡거나 로프를 걸 때 아이스바일을 입으로 물고 있어야 한다. 아이스바일을 떨어뜨리면 등반이 끝나는 것은 물론 날카로운 도끼날에 다칠 수도 있다.

○ 무쇠 정신력

선수들은 하나같이 “아이스클라이밍에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방심하는 순간 경기는 끝이다. 발을 한 번만 잘못 찍으면 곧바로 추락이다.

선수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간다. 손과 다리를 둘 곳 없는 순간 온몸의 근육은 떨려오기 시작한다. 칼바람이 한층 더 매서워지는 것도 이때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지 않으면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수 없다.

9일 난이도 경기에선 지난해 월드컵 루마니아대회 남녀 동반 우승을 차지했던 박희용과 신윤선(여·이상 노스페이스)이 남녀부에서 각각 2위에 올랐다. 박희용은 결선에서 오스트리아의 마르쿠스 벤들러와 18.310점으로 동률을 이뤘지만 준결선 점수에서 뒤져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8일 속도 경기에서는 막심 토미로프와 이리나 바가예바(여·이상 러시아)가 남녀부 우승을 차지했다.

청송=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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