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새별 새꿈]<9>발레 ‘지젤’ 주역무용수 이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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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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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대에 서면 ‘빛’이 보인대요”

11일 오후 서울 예술의 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이은원 씨가 포즈를 취했다. 이 씨가 입은 무릎 훨씬 아래 길이의 풍성한 튀튀는 ‘지젤’에서 발레리나들이 입는 로맨틱 튀튀다. 김재명 base@donga.com
11일 오후 서울 예술의 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이은원 씨가 포즈를 취했다. 이 씨가 입은 무릎 훨씬 아래 길이의 풍성한 튀튀는 ‘지젤’에서 발레리나들이 입는 로맨틱 튀튀다. 김재명 base@donga.com
연습실 맨 뒤쪽에 선 소녀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시선은 동작을 알려주는 안무가, 앞에서 춤추는 선배 발레리나, 거울 속의 자신을 몇 차례나 바쁘게 오갔다. 사슴같이 큰 눈은 특별한 꾸밈이 없이도 첫사랑에 빠진 시골처녀 지젤 그대로였다.

11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 피아노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2월 24∼27일 공연되는 ‘지젤’ 주역무용수들의 연습이 진행되고 있었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김주원 씨 뒤로 새로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발레리나 이은원 씨(20)다.

2시간에 걸친 연습이 끝난 뒤에도 이 씨는 연습실을 떠날 줄 몰랐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자는 말에도 “잠깐만 동작 한 번만 더 맞춰보고요”를 연발하며 파트너를 붙잡았다.

“지금 조금 정신없어요. 어제(10일) 오후 클래스 끝나고 갑자기 내일부터 연습 나오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지젤’은 학교에서 2분짜리 솔로를 춰본 것 외에는 전부 처음이에요.”

작년 7월 인턴단원으로 입단해 9월 ‘라이몬다’에서 군무로 처음 국립발레단 무대에 섰다. 12월 초 ‘백조의 호수’에서는 솔리스트인 스페인 공주를 맡았다. 12월 말 ‘호두까기 인형’에서 주인공 마리 역으로 첫 주역 데뷔했다. 군무에서 주역까지 걸린 기간은 단 3개월.

“여덟 살 때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저도 발레 하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어요. 아빠는 딸 몸을 남자들이 그렇게 막 만지게 할 수 없다고 반대하셨다는데 제가 단식투쟁을 하면서 고집을 피워 어쩔 수 없이 하라고 하셨대요.”

취미로 시작한 발레는 예원학교를 거쳐 2007년 고교과정을 생략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조기 입학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중국 상하이국제콩쿠르 주니어 2등, 2008년 불가리아 바르나국제콩쿠르 주니어 3등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즐겁기만 했던 발레가 힘들어진 것은 그 뒤부터였다.

“조기 입학을 해서 동기들이 모두 서너 살 많은 언니 오빠들이었어요. 지금도 또래 친구가 별로 없어요. 2학년 말이 되면서는 욕심만큼 발레도 늘지 않고, 어릴 때부터 발레만 하느라 제가 못해본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안달병’이 나서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2008년 12월 찾아온 부상은 전화위복이 됐다. 부정확한 동작으로 무리해 연습을 하다 무릎뼈 부상을 당해 8개월 동안 발레를 쉬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커피숍 아르바이트에 프랑스 파리 배낭여행까지 감행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다 해봤는데 금방 질렸어요. 제가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건 발레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학교로 돌아와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훨씬 편했다. 그리고 1년 반, 낭만발레의 대명사 ‘지젤’에 주역으로 설 기회를 얻은 것이다.

소감을 묻자 이 씨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아, 정말 예쁘다. 아름답다’ 하며 최고로 동경해오던 작품이었는데 막상 직접 해보니 너무 어려워요.” 함께 주역으로 서는 김주원 김지영 씨는 이 씨가 처음 발레를 시작하던 무렵부터 주역으로 활약하던 대선배이다. 이 씨는 “같이 주역으로 무대에 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하겠다. 그냥 보고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만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손부터 내저었다. “전 그냥 다 보통인 것 같아요. 아직 노력해야 할 점이 너무 많아요. 신경 안 쓰면 팔이 자꾸 뒤로 뒤집어지는 버릇이 있는데 그것도 고쳐야 하고, 안쪽 근육을 강화해야 하고, 손가락 끝까지 에너지 보내는 것도 아직 잘 안되고….” 재차 캐묻자 그때서야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한마디 한다. “제 얘기가 아니고요. 주원이 언니가 그러시는데 제가 무대에 서면 ‘빛’이 있대요. 중요한 거라고 하셨어요.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진짜 아니고요….”

이제 갓 스무 살, 프로 무용수로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큰 역할을 맡게 된 그는 인터뷰 내내 ‘부담’이나 ‘초조’ 같은 단어는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예전엔 무슨 일이 있으면 굉장히 조급해하는 편이었어요. 지금은 너무 달려가지 않으려고 해요.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하나씩 해내며 천천히 쌓아나가야겠다고 생각해요.”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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