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천재들, 부활 꿈꾸는 천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7일 03시 00분


박찬호 보다 기대 더 컸던 손경수… 질병에 1군 마운드 한번 못 올라
이종범에 버금간다는 ‘대물’ 강혁… 이중등록 파문 - 잦은 부상 시달려

스포츠에는 종종 천재들이 출현한다. 신이 특별히 빚어낸 듯한 천재들. 연습벌레의 성공 신화에 환호하던 팬들은 천재들의 신출귀몰 플레이에 열광한다. 하지만 ‘나라의 희망’으로까지 불리던 타고난 떡잎들이 항상 기대만큼의 결실을 보는 것은 아니다.

한국 야구의 황금 세대라 불리는 92학번 투수들. 흔히 임선동, 조성민 그리고 박찬호를 떠올린다. 하지만 사실 빅3의 한 자리는 박찬호가 아닌 손경수였다. 그는 경기고 졸업 후 OB(현 두산)의 계약금 2억 원 입단 제의를 마다하고 홍익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 후 아버지의 교통사고 등으로 방황했다. 자퇴 후 OB에 입단했지만 간염 발병 등 악재가 겹치며 결국 1군 마운드에는 한번도 못 오르고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에 이종범(KIA)에 버금가는 야구 천재로 불렸던 이가 강혁이다. 그는 1993년 한양대와 OB에 이중 등록 파문을 일으켜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영구제명을 당했다. 대학과 실업팀 현대 등을 거치는 동안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그 덕분에 1999년 두산에서 프로 무대에 섰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그저 그런 선수가 돼 있었다. 2007년 SK에서 방출된 후 지금은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지낸다. 강혁은 선수 시절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부상은 천재들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 장애물. 상대의 집중 견제 대상이 되고 선수 자신도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무리한 탓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예선 한일전에서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은 김병수는 한국 축구를 짊어질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부상으로 정작 올림픽 본선에 나서지 못했고 이후에도 일본 실업팀 등을 전전하며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는 현재 영남대 감독이다.

축구에는 천재란 수식어를 달고 나오는 이가 유난히 많다. 그만큼 비운의 스타도 허다하다. 영국 축구 유학생으로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의 꿈을 꿨던 이산은 현재 소식을 알기 힘들다. 고종수, 이천수는 한때 최고 스타 자리에 올랐지만 무절제한 사생활로 빛을 잃었다. 윤정환처럼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평가를 듣는 경우도 있다. 윤정환은 “그의 절묘한 패스를 받을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재기를 꿈꾸는 천재들도 있다. ‘제2의 선동열’로 불렸으나 각종 사건과 무단이탈 등으로 문제아로 낙인찍힌 김진우는 올해 친정팀 KIA에서 부활을 노린다. 2004년 최연소로 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에 데뷔한 뒤 나비스코챔피언십 준우승으로 확 뜬 후 잊혀졌던 송아리. 그는 올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다시 도전에 나선다. 추락한 천재의 힘찬 날갯짓은 환호와 열광을 넘어선 감동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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