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어느 날. 군복무 중이던 형에게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저 “자랑스러운 내 동생! 절대 아프지 마”가 전부였다. 무뚝뚝한 동생도 편지를 보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형의 편지는 동생이 늘 들고 다니는 지갑 속에 고이 보관돼 있다. 짧지만 깊은 형의 진심을 동생이 알았고, 그 마음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한화 에이스 류현진(24)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꼽을 때마다 형 류현수(27) 씨 이름을 빼놓지 않는다. 세 살 많은 형과 함께 캐치볼을 하면서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고,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후에는 형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류현진은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야구하는 나를 뒷바라지 하느라 형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썼다. 하지만 형은 불평 한 번 한 적이 없다. 그래서 항상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했다.
형제에게는 추억이 많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함께 야구장에 다녔고, 류현진이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던 고교 시절에는 형이 힘들어하는 동생을 끌고 나가 함께 운동장을 달려 줬다.
데뷔 후에는 형도 부모님과 함께 동생이 등판하는 날마다 야구장을 찾았다. 동생의 승리로 끝난 날에는 “잘 했다”는 말 대신 하이파이브로 기쁨을 대신했다. 형제의 우애는 그렇게 깊어졌다.
류현진은 미국 뉴욕에서 유학 중인 형과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는다. 동생도 형에게 보답한 적이 있다. 형이 인천에서 의경으로 군복무했던 2007년과 2008년, 류현진은 인천 원정 경기가 있을 때마다 형의 근무처를 방문했다. “우리 형 잘 좀 봐 달라”고, 윗분들에게 사인볼을 안겨 드리고 돌아서기도 했다.
류현진이 지금 형에게 바라는 건 한 가지.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중에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될 때, 형이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형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덩치 큰 괴물이 쑥스럽게 말했다. “형, 영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해서 돌아와야 해! 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형을 통역 겸 매니저로 고용할게!”사진제공 | 류현진 호놀룰루(미 하와이주)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